일상에서 출발하는 청년 정책: 다산과 풍석의 관점에서
청년 정책이 청년에게 와 닿지 않는 이유
청년 정책은 이제 우리 시대에 아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정책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많고 많은 청년 정책이 청년의 삶에 잘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책은 많은데 왜 효력이 떨어지는 것인가?
한 진단은 홍보 부족과 접근성이다. 정책은 있는데 청년이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책도 대개 정보 전달의 개선으로 향한다. 통합 플랫폼을 만들고, 맞춤형 추천을 붙이고, 청년의 언어로 소통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이 진단은 문제의 절반만 짚는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대부분의 청년 정책이 신청해야 받을 수 있는 정책이라는 데 있다. 공고를 확인하고, 자격 요건을 따지고, 서류를 준비하고, 선정을 기다린다. 선정된 소수에게 그 정책은 인생을 바꾸는 지원이 되지만, 탈락한 다수에게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사업 수가 389개로 늘어나도 한 청년이 실제로 통과하는 관문은 한두 개다. 정책의 총량과 개인의 체감 사이에는 애초에 연결이 성립하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는 정책이 다루는 문제의 단위가 청년의 하루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취업, 주거, 자산 형성. 모두 절실하고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몇 년 단위로 움직인다. 반면 체감은 훨씬 짧은 주기로 발생한다. 오늘 아침의 출근길, 오늘 저녁의 골목, 이번 주 방의 상태. 정책이 응답하는 시간의 단위와 청년이 살아가는 시간의 단위가 어긋나 있다.
공급자는 정책을 사업 단위로 책정하지만, 수요자는 정책을 하루 단위로 겪는다. 이 두 단위가 맞물리지 않는 한 사업 수를 아무리 늘려도 체감도는 오르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을 더 많이 만드는 일이 아니라, 정책이 도착하는 지점을 다시 정하는 일이다.
청년의 삶에서 출발하는 청년 정책
조선 후기 같은 시대를 산 두 지식인이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강진 유배지에서 『경세유표』와 『목민심서』를 썼다. 관제와 토지 제도, 세법, 수령의 직무를 다시 설계하는 작업이었다. 국가라는 틀을 위에서부터 바꾸면 그 아래 백성의 삶이 따라 바뀐다는 구상이다. 우리가 실학이라는 말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림이다.
한편으로는 낯선 이름도 있다. 풍석 서유구(1764~1845)는 두 살 아래였다. 규장각 초계문신 출신에 훗날 전라도관찰사와 이조판서, 대제학까지 오른 관료였던 풍석은 집안이 옥사에 연루되어 18년 가까이 관직에서 물러나 향촌에 머물렀다. 그 시간 동안 직접 농사를 지으며 『임원경제지』 113권을 정리했다. 벼와 채소를 기르는 법, 나무 심는 법, 옷감 짜는 법, 음식 만드는 법, 집터를 고르고 집을 짓는 법, 도구를 쓰는 법, 병을 다스리는 법, 살림의 수지를 맞추는 법. 전라도관찰사 시절 기근을 만나서는 고구마 보급을 위해 『종저보』를 따로 지어 재배법을 알렸다.
다산의 개혁 대상이 제도였다면 풍석의 개혁 대상은 살림이었다. 다산이 국가의 설계도를 그리는 동안 풍석은 오늘 저녁 밥상과 지붕과 우물의 문제를 적었다. 두 사람 사이에 우열은 없다. 다산이 없었다면 조선 후기 개혁 사상의 골격이 남지 않았을 것이고, 풍석이 없었다면 그 시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먹고 입고 살았는지를 우리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두 사람은 개혁이 삶에 도착하는 경로를 다르게 보았다. 다산은 제도가 바뀌면 삶이 바뀐다고 보았고, 풍석은 삶이 나아지는 방법을 먼저 손에 쥐여주는 편이 빠르다고 보았다.
오늘의 청년 정책 담론은 압도적으로 다산 쪽에 서 있다. 총괄 기구를 신설하고, 부처 간 연계를 정비하고, 예산을 재배분하고, 전달체계를 개편하자는 논의가 중심이다. 모두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논의가 결론에 이르기까지 몇 해가 걸리는 동안에도 청년의 하루는 계속 흘러간다. 거시적인 정책 담론이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담론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청년의 삶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청년을 정책 설계 회의에 부르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청년이 매일 반복하는 행동 하나를 골라, 그 행동이 일어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바꾸는 일이다. 지금은 풍석의 방식이 한 번쯤 더 필요한 때가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