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서울청년센터 강북(청년사례연구소)

[청년커먼즈 ④] '관계'를 짓는 청년들: 강화, 강북, 가미야마의 실험

김지윤 사례연구원
입력
제도의 대상에서 삶의 설계자로, 수동적 인구가 아닌 주체로 서다

관계는 제도가 다루기 가장 어려운 것에 속한다. 셀 수도 없고, 예산으로 살 수도 없으며, 서비스로 제공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최근 몇 해 사이 우리 제도는 이 어려운 것을 정면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2024년부터 정부는 인구를 새로운 방식으로 센다.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았더라도 한 달에 한 번, 하루 세 시간 이상 그 지역에 머물렀다면 인구로 잡는 '생활인구'다. 주소지가 아니라 드나든 시간으로 소속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니, 사실상 관계를 세어보려는 시도다. 올해 3월 시행된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도 다르지 않다. 아픈 사람을 시설로 보내는 대신 살던 동네에서 계속 살게 하겠다는 것은, 병상 대신 이웃에 기대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다만 두 제도 모두 사람을 한쪽에 세워둔다. 세는 쪽이 있고 세어지는 사람이 있다. 돌보는 쪽이 있고 돌봄을 받는 사람이 있다. 통합을 선언한 설계도 안에 정작 그곳 사람이 없다는 지적이 시행 전부터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시리즈가 붙들어온 문제가 여기서 다시 나타난다. 1편에서 방은 있는데 권한이 없다고 썼고 2·3편은 그 권한을 소유의 형태로 되찾으려는 시도를 살폈지만, 소유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지분을 가진 사람도 혼자 아플 수 있다. 그래서 청년커먼즈 4편은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묻는다.

 

 

이틀 밤이 필요한 일

인천 강화도의 '잠시섬'은 강화에 정착한 청년들이 함께 세운 협동조합 청풍이 2017년부터 운영해온 체류형 프로그램이다. 참여자는 2박에서 5박까지 머물며 강화 사람들이 다니는 작은 가게를 찾아가고, 저녁에는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를 쓴 뒤 다른 참가자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관광은 하루면 되지만 관계에는 이틀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프로그램의 길이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

 

청풍은 자신들의 일을 여행업이 아니라 환대업이라 부른다. 손님을 응대하는 일이 아니라, 같은 시간을 나누며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관계를 뜻한다는 것이다. 그 머무름은 실제로 정착으로 이어져서, 대표 나서경은 활동이 4년을 넘어서자 도시로 나갔던 토박이 청년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정주 지원금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틀 밤이 먼저 있었다.

 

강화 잠시섬에 머문 청년들이 직접 수확해 담은 채소

 

30분이라는 결정

서울 강북구 번동에는 환자가 오지 않는 병원이 있다. 건강의집의원 홍종원 원장이 왕진 가방을 메고 환자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기 때문이다. 그는 의대를 졸업하고 진료실이 아니라 동네로 갔다. 주민들 틈에서 축제를 꾸렸고, '건강의집'이라는 사랑방을 얻어 청년 몇 사람과 그곳에서 지냈다. 그렇게 지역에 스며든 뒤에야, 외래 없이 방문진료만 하는 의원을 열었다. 국내 첫 사례였다. 병원이 마을로 내려간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병원이 자라났다.

 

그 순서는 운영 원칙에도 남았다. 개원 당시 세운 원칙은 외래를 보지 않고 방문진료만 하며, 1회 방문에 30분에서 1시간의 진료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3분 진료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나라에서 30분은 의학적 판단이 아니라 관계에 관한 결정이다. 남의 집에 30분을 머무르면 약봉지 말고도 보이는 것이 생긴다. 냉장고 속 사정이나 문턱의 높이, 말동무의 유무 같은 것들이다.

 

짓는 방식이 곧 설계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초는 청년 이주로 알려진 산골 마을이지만, 볼 대목은 이주자 수가 아니라 그 마을이 집을 계획한 방식이다. 2015년부터 40대 이하의 마을 공무원과 주민들이 두 시간짜리 모임을 서른 번쯤 열어 30년 뒤의 마을을 구상했고, 거기서 '마을을 미래 세대에 잇는 프로젝트'가 나왔다. '오노지 집합주택'은 그 결과물의 하나다. 30년 뒤를 살아갈 세대가 계획의 대상이 아니라 계획을 쓰는 자리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집의 형태도 달라졌다. 목조 주택 20호에 광장과 문화시설을 갖춘 '아유쿠이가와 코몬'을 붙이고, 자녀 양육 세대와 단신 거주자용 공동생활 유닛을 섞어 나이도 사는 방식도 다른 사람들이 뒤섞이도록 했다. 마을이 넓어 집에 돌아오면 또래가 없고, 새로 지을 땅도 빌릴 집도 마땅치 않다는 문제를 두고 몇 해에 걸쳐 논의한 끝에 추려진 조건들이다. 살아본 사람이 설계에 참여하면, 도면에 남는 것이 평수만은 아니게 된다.

 

 

먼저 만든 사람들

세 곳의 방식은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시설을 먼저 세우고 사람을 채워 넣는 대신, 사람이 만나는 시간을 먼저 설계하고 그 시간이 요구하는 만큼의 공간과 제도를 나중에 붙였다. 앞선 편들이 다룬 자산화가 커먼즈의 하드웨어라면, 관계와 돌봄은 그 위에서 돌아가는 운영체제다.

 

더 중요한 공통점은 관계를 한 방향으로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잠시섬의 참여자는 대접받는 손님이면서 동시에 다음 손님을 불러오는 사람이 되고, 홍 원장의 30분은 진료 시간인 동시에 동네를 배우는 시간이며, 가미야마의 젊은 세대는 입주자이기 전에 계획을 쓴 사람이었다.

 

제도가 어려워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지역에 이틀을 머문 청년은 이제 인구로 잡히지만, 그가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지를 묻는 절차는 없다. 통합돌봄 시행령은 협의체에 참여할 전문가를 분야별로 촘촘히 정해두었지만, 그 표에서 끝내 찾기 어려운 것은 이미 그 동네에서 서로를 돌보고 있던 사람들의 자리다.

 

세 곳은 그 자리를 스스로 만들었다. 제도가 뒤늦게 이름을 붙이기 전에, 이미 이틀 밤과 30분과 서른 번의 회의로 만들어두었다. 관계는 인정받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생긴 뒤에 인정받는다.

 

 

설계자의 자리

청년을 지역 활성화의 소재로 부르는 시대는 충분히 길었다. 축제의 스태프로, 시범사업의 참여자로 호출됐고 그 호출은 대개 사업 기간과 함께 끝났다. 세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다른 종류의 계약이다. 청풍의 청년들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었고, 홍 원장은 사업에 배정된 것이 아니라 자기 의원을 열었으며, 가미야마의 젊은 세대는 계획의 대상이 아니라 계획을 쓴 사람이었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위탁과 용역이 아니라 지분과 권한이다. 자문하고 심의하는 자리를 넘어, 무엇을 지을지 얼마를 쓸지 결정하는 권한이다.

 

 

돌봄을 통합하겠다는 법도, 사람을 새로 세는 통계도 아직 주어가 행정이다. 주어가 바뀌지 않는 한 청년은 지원과 돌봄의 대상 칸에 머문다. 그러나 세 곳에서 본 것은 그 칸이 처음부터 잘못 그어졌다는 사실이다. 이틀을 머문 사람은 동시에 다음 사람을 부르고, 남의 집 문턱을 넘은 의사는 동시에 그 동네를 배우며, 입주할 집을 기다린 세대가 그 집의 도면을 썼다. 돌보는 쪽과 돌봄받는 쪽은 원래 나뉘지 않는다. 마을이 스스로를 돌본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필자는 도시커먼즈와 통합돌봄정책을 연구하는 독립연구자로, 카카오 브런치 매거진 《도시와 돌봄을 읽다》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김지윤 사례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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