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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었음 청년’은 없다③…지원은 있는데, 나는 몰랐슈

김지유 사례연구원
입력
나는 있는 지원도 모르는 ‘연결끊김 청년’
새 사업만큼 제도와 사람 사이 연결 필요
학생·구직자·예술인, 나는 어떤 지원 대상?
▲ 청년정책 연구를 위한 심층 인터뷰 참여자. 신원 보호를 위해 실제 촬영 사진을 생성형 AI로  재구성했다. [사진=팀 NS]

“그런 돈을 준다고요?”


서울시 청년수당에 관해 설명하자 인터뷰 참여자 이정민(가명) 씨가 되물었다.
“아예 몰랐어요. 그런 돈을 준다는 것도 몰랐고, 제가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더 몰랐죠. 취업 관련해서 지원해주는 게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는데, 정확히 어떤 사람이 받는 건지는 찾아본 적이 없어요.”


청년을 위한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도는 이미 있었고 정보도 공개돼 있었다. 다만 당사자는 자신이 그 제도를 ‘찾아볼 만한 사람’이라는 사실부터 알지 못했다.


앞선 칼럼에서는 ‘쉬었음 청년’이라는 분류가 실제 청년들의 복합적인 상태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을 살펴봤다. 이어 문과·예술계 청년의 준비 과정이 취업이나 작품 발표처럼 가시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그 시간이 쉽게 ‘경력 공백’으로 처리되는 문제도 짚었다.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본다. 지원정책이 이미 있고 정보도 공개돼 있다면, 왜 어떤 청년은 자신이 그 정책의 대상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할까.


이를 단순히 ‘기관의 홍보 부족’이나 ‘청년의 정보 탐색 부족’ 중 하나로 돌리기는 어렵다. 정책을 만드는 것과 사람이 그 정책에 도착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예술인인가, 학생인가, 구직자인가
이 씨는 예술대학교에서 이론 분야를 공부하다 휴학했다. 미술관에서 단기 근무했고 이후에는 생계를 위해 물류센터에서 일용직 노동을 했다. 그의 이력을 한 단어로 분류하기는 쉽지 않다.


예술대학에 다니지만 작품 제작을 중심으로 하는 실기 전공자는 아니다. 취업을 고민하지만 특정 기업이나 직무를 정해 전형적인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도 아니다. 문화예술 현장에서 일했고, 생계를 위한 노동을 병행하며 다음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제가 예술인인가 하면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예술대 학생이기는 한데 제가 직접 작품을 계속 만드는 전공은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취준생이라고 하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어느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자격증을 따고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요.”


지원사업을 알아볼 때도 같은 문제가 생겼다. “공고를 보면 ‘예술인’이라고 쓰여 있고, 다른 데는 ‘미취업 청년’이라고 쓰여 있잖아요. 그러면 먼저 ‘내가 여기에 들어가나?’부터 생각하게 돼요. 저는 그 중간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정책을 이용하려면 신청서를 쓰기 전에 먼저 자신이 ‘무슨 사람’인지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청년의 삶은 학생, 예술인, 구직자, 미취업자처럼 한 칸씩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다. 학생이면서 일할 수 있고, 일하면서 취업을 준비할 수 있으며, 창작을 하면서 생계를 위해 전혀 다른 노동을 할 수도 있다.


여러 상태가 겹칠수록 정책을 찾기 위해 필요한 사전지식도 늘어난다.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면 먼저 ‘나는 누구인가’를 제도의 분류법에 맞춰 정리해야 한다. 정책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신청보다 분류가 먼저 숙제인 셈이다.

 

내가 뭘 모르는지 모르는데, 무엇을 검색하나
“주변 사람들한테 이런 사업이 있다고 말하면 대부분 ‘그런 것도 있어?’라고 해요. 그런데 기관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것도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모든 사람한테 하나하나 연락해서 ‘당신은 이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알려줄 수는 없잖아요.”


이 씨 역시 개인의 정보 탐색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찾아보는 사람은 정말 잘 찾아봐요. 하나를 알고 나면 거기서 다른 것도 찾고요. 그러니까 개인도 찾아보려고 해야 하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예 모르는 사람은 뭘 검색해야 하는지부터 모르는 것 같아요.”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 정책 정보가 홈페이지와 공고문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만으로 전달이 끝났다고 할 수는 없다. 반대로 모든 정보를 기관이 개별 청년에게 배달할 수도 없다.


그 사이에는 ‘검색 이전의 단계’가 있다. 자신을 취업준비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청년 취업 지원’을 검색할 수 있다. 창작자로서 정체성이 분명하다면 ‘청년 예술인 지원’을, 월세가 가장 큰 고민이라면 ‘청년 주거 지원’을 검색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무엇인지부터 애매한 사람은 무엇을 검색해야 할까.


정책에 익숙한 사람은 하나의 사업을 통해 기관을 알고, 그 기관에서 또 다른 사업을 발견한다. 한 번 정보망에 진입하면 다음 정보로 넘어가는 길이 생긴다.


반대로 자신을 어떤 정책의 대상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검색창 앞에서부터 멈춘다.
이 씨의 표현을 빌리면 “지원이 없는 게 아니라, 지원이 있다는 걸 아는 길조차 모르는” 상태다.
정책의 사각지대는 지원사업이 전혀 없는 곳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사업과 사업 사이, 자격과 자격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 자신의 위치와 다음 경로를 찾지 못할 때에도 생긴다.


이 글에서 이를 ‘연결끊김’이라고 불러보려 한다. 

 

사회적으로 고립됐다는 뜻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다. 필요한 정책과 자원은 있는데 자신의 상황과 제도 사이의 접점을 발견하지 못해 정보망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하나의 제도를 만난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상태다.


정보의 부재보다 연결의 간극에서 생기는 사각지대다. 법을 몰라도 법률상담은 받을 수 있듯 이 문제는 청년정책만의 특수한 문제도 아니다. 전문성이 높은 분야일수록 이용자는 자신의 문제를 그 분야의 언어로 정확히 번역하기 어렵다.


법률상담을 생각해보자. 일반 시민이 처음부터 자신의 문제가 민사인지 형사인지, 노동인지 행정인지 판단한 뒤 알맞은 전문가를 찾아가는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월급을 못 받았다.”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집주인과 문제가 생겼다.” 대개는 이렇게 일상의 언어에서 출발한다. 민간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도 이용자가 키워드로 관련 사례와 변호사를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상담받을 분야를 모를 경우 자신의 법률문제를 글로 입력해 분야를 찾는 기능을 제공한다.


핵심은 이용자에게 먼저 법률체계부터 공부해 오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를 전문용어로 정확히 명명할 수 있어야만 도움에 도달할 수 있다면, 전문지식이 가장 부족한 사람이 가장 높은 진입장벽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전문적인 판단만큼, 그 판단에 도달하기 전의 접수와 분류, 안내와 연계도 중요하다.
이 역할은 전문가를 대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문성이 필요한 곳까지 사람을 제대로 데려다 놓는다.


청년정책에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청년이 정책을 이용하려면 먼저 정책전문가가 돼야 할까.
 

“휴학 중이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예술 분야에 관심은 있지만 아직 예술인이라고 부를 정도의 경력은 없습니다. 취업도 고민하지만 정확한 직무는 정하지 못했습니다.”


이 정도의 설명에서 출발해도 “그렇다면 이런 제도부터 살펴봅시다”라는 다음 문장이 나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창작자가 ‘행정의 언어’를 만날 때
정책을 발견했다고 끝은 아니다. 예술지원사업에서는 한 차례 더 번역이 필요하다. 창작자는 자신의 활동을 공모사업의 문법으로 설명해야 한다. 작업의 목적과 배경, 진행 과정과 기대효과를 나누고 이를 일정과 예산으로 구체화한다.


이 씨는 말했다. “작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직 정확히 결과를 모르니까 해보는 것도 있잖아요. 그런데 지원서에는 왜 하는지, 뭘 할 건지, 결과가 뭔지를 먼저 정리해서 써야 하니까요. 처음 해보는 사람은 작업 자체보다 ‘이걸 어떻게 써야 하지?’에서 막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이를 불필요한 행정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공적 재원이 투입되는 만큼 기관은 제한된 재원을 어떤 기준으로 배분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지원받는 사람 역시 자신의 계획과 예산을 일정한 형식으로 제시할 책임이 있다.


문제는 기준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기준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경험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공모사업을 여러 번 경험한 사람은 ‘사업목적’, ‘기대효과’, ‘성과’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처음 지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활동을 설명하는 동시에 지원제도의 문법까지 새로 배워야 한다. 따라서 ‘지원받을 가치가 있는 활동’과 ‘지원서로 설명하기 쉬운 활동’은 완전히 같은 말일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심사 기준을 낮추거나 행정 절차를 없애는 일이 아니다. 처음 들어온 사람도 자신의 활동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도록 번역에 드는 비용을 낮추는 일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 역시 단순히 돈을 ‘퍼주는’ 문제가 아니다. 당장 수익으로 환산되지 않는 창작과 실험이 이후 사회의 문화적 자산으로 돌아올 가능성에 공공이 먼저 비용을 대는 투자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 투자의 입구가 행정 언어에 익숙한 사람에게만 유리하지 않은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책에도 ‘드라마투르기’가 필요하다
연극에는 ‘드라마투르기’라는 역할이 있다. 작품을 대신 만드는 사람은 아니다. 작품의 자료와 맥락을 살피고 작가·연출·배우 등 서로 다른 역할과 관점 사이를 오가며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잇는다.


정책에도 이와 비슷한 사람이 필요하다. 청년 대신 인생을 설계하거나 지원서를 써주는 사람이 아니다. 당사자의 언어와 제도의 언어 사이를 오가며 다음 주소를 알려주는 사람이다.
 

“지금 휴학 중이군요. 학생 신분에서 가능한 지원과 미취업 청년 대상 지원을 함께 확인해봅시다.”
 

“아직 예술 활동 실적이 많지 않아 이 사업에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신 초기 창작자를 위한 사업이나 교육은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여기에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대신 이 기관에서 다음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안 됩니다’ 뒤에 마침표를 찍지 않고 ‘그렇다면 여기로 가보세요’까지 말하는 것이다.
 

다행히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발명도 아니다. 현재 서울청년센터에서는 청년지원매니저와 현재의 고민과 상황을 이야기하며 자신에게 필요한 정책과 정보를 찾는 ‘청년정책 종합상담’을 운영하고 있다. 진로와 취·창업뿐 아니라 문화예술, 주거, 건강, 생활지원 등 여러 분야를 다루고 필요에 따라 관련 자원으로 연결한다.
 

즉 필요한 것은 ‘연결자’라는 새로운 직업명을 하나 더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있다. 이미 정책 현장에 존재하는 ‘연결하는 노동’을 정책의 핵심 기능으로 제대로 인정하는 것에 가깝다.


연결자는 정책의 외부 전달자가 아니라 정책 수행의 일부여야 한다. 사업의 취지와 자격요건을 이해하는 동시에 이용자가 어디에서 반복해서 막히는지도 알아야 한다. 개인에게는 제도를 번역하고, 기관에는 현장에서 발견한 단절을 되돌려 보내야 한다.


이를 단순한 친절이나 서비스로 보면 연결 업무는 언제든 부수적인 일이 된다. 그러나 정책의 목적이 공고문을 게시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합한 사람에게 공공자원이 도달하도록 하는 데까지 있다면, 연결과 번역 역시 집행이다.

 

한 기관이 모든 답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청년 한 명마다 전담자를 붙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기관이 모든 정책을 외우고 있을 필요도 없다. 필요한 것은 ‘해결’보다 자연스레 ‘연결'할 수 있는 구조다.
 

예술기관을 찾은 청년이 해당 지원사업의 자격요건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예술기관이 그의 취업과 주거 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사업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에서 끝나는 것과 “우리 사업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현재 상황이라면 이쪽에 문의해보세요”까지 말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청년센터 역시 전문적인 법률 문제를 직접 판단할 필요는 없다. 적절한 전문상담기관으로 연결하면 된다. 연결의 핵심은 한 사람이 모든 문제의 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르는 문제의 다음 주소를 아는 것이다. 각 기관의 전문성을 흐리지 않으면서도 기관과 기관, 사업과 사업의 경계에서 사람이 떨어져 나가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이 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어디 한 군데만 들어가면 좋겠어요. 거기서 모든 걸 해달라는 게 아니라, ‘이건 여기 말고 저쪽에 물어보세요’ 정도만 정확히 알 수 있어도 다음에는 제가 찾아갈 수 있으니까요.”


연결끊김의 핵심은 어쩌면 여기에 있다. 청년에게 언제나 누군가 끝까지 손을 잡아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 발을 어디에 디뎌야 하는지만 알아도 스스로 갈 수 있는 사람이 많다.
 

정책은 자꾸 사람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라고 묻는다.
 

학생입니까. 구직자입니까. 미취업자입니까. 예술인입니까.


하지만 사람은 제도의 항목보다 먼저 존재한다. 사람을 제도에 맞게 잘라 넣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에서 이용할 수 있는 제도를 보여주는 것.


새로운 지원사업 하나를 더 만드는 것만큼, 이미 만들어놓은 정책에 사람이 도착할 수 있게 하는 일도 중요하다. 다음 정책을 만들기 전에 길부터 제대로 나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 팀 NS: 김지유, 김지후, 남형주

김지유 사례연구원
gulove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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