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서울청년센터 강북(청년사례연구소)

'사다리의 첫 칸'을 걷어찬 사회… 완성품만 찾는 채용엔 미래가 없다

김영 사례연구원
입력
키우지 않고 경력만 쇼핑하는 기업들… 청년에게 '서투를 권리'를 돌려주어야

9월의 명절과 축제, 그 뒤편에 갇힌 청춘들

 

9월이 오면 세상은 풍요와 축제로 들썩인다.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다가오고 달력 한편에는 청년을 응원한다는 '청년의 날' 기념행사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축제의 꽃가루가 흩날리는 도심 한복판에서 한 걸음만 물러서면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친척들의 "요즘 뭐 하니"라는 질문이 두려워 고향행 버스 대신 스터디카페로 발길을 돌린 청년들과 하반기 공채 공고 창 앞에서 굳어버린 구직자들의 메마른 얼굴이다.

 

본격적인 하반기 채용 시장이 열렸지만 모니터 앞에 앉은 취업준비생들의 표정은 기대보다 착잡함에 가깝다. 공고 창은 요란하게 열렸지만 정작 대학 문을 갓 나선 청년들이 디디고 설 자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서다.

*본 이미지는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제작된 연출 이미지입니다.

신입 공고를 메운 경력자들, '0년 차'의 설 자리

 

오늘날 채용 시장을 지배하는 가장 지독한 형용모순은 바로 '중고 신입'이다. 신입사원을 뽑는 자리인데도 1~2년 안팎의 실무 경력을 가진 지원자들이 최종 합격자 명단을 독식한다. 수시 채용과 직무 적합성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면서 기업들은 조금이라도 즉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학을 막 졸업한 이른바 '쌩신입'들은 서류 전형조차 통과하기 어려운 처지로 내몰렸다. "경력을 쌓기 위해 신입에 지원하는데, 신입을 뽑을 때 경력을 요구하면 대체 첫 경력은 어디서 쌓으란 말인가." 청년들이 토로하는 이 자조 섞인 외침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출발선 자체가 증발해 버린 비정상적인 채용 구조를 향한 절박한 비명이다.

 

이제는 인턴십조차 '금턴'이라 불리며 인턴을 하기 위해 또 다른 스펙을 쌓아야 하는 기형적인 경쟁이 일상화됐다. 9월의 축제와 정부의 전시성 지원책 뒤편에서 첫 경험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청년들은 노동시장 진입 단계부터 배제된 채 장기 취업준비생의 늪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리센느'의 성장엔 열광하면서, 왜 현실에선 '0년 차'를 지우는가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중소 기획사 아이돌 ‘리센느’의 서사도 이 문제를 깊이 돌아보게 만든다. 처음부터 거대한 자본이나 후광을 등에 업고 출발하지 않았지만, 무명의 시간을 지나 대중에게 발견된 이들의 이야기는 청년들에게 묵직한 대리만족과 서글픈 위안을 건넨다. 대중이 이들의 기적에 열광한 이유는 처음부터 흠 없는 완성형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서툴고 불확실한 시간을 버텨내며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채용 시장은 청년들에게 그런 시간과 여유를 단 한 뼘도 허락하지 않는다. 과거 우리 사회의 기업들은 청년의 잠재력과 기초 소양을 보고 사람을 뽑았다. 입사 후 연수와 교육을 통해 조직의 인재로 길러내는 것을 기업의 당연한 사회적 기능이자 투자로 여겼다.

 

지금의 채용 시장은 교육과 훈련의 비용을 철저히 기피한다. 대학과 청년 개인에게 실무 역량 준비의 책임을 모조리 떠넘긴 채, 기업은 잘 가공된 완제품만을 시장에서 '쇼핑'하듯 고르는 데 익숙해졌다. 기업이 사람을 키우지 않고 검증된 경력만 편식하는 구조가 굳어지면 청년 세대의 성장 사다리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청년을 소모품처럼 즉시 투입 가능한 부품으로만 취급해서는 노동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기업은 신입 채용 본연의 취지를 되살려 서투른 청년들이 조직 안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완충지대를 회복해야 한다. 정부 역시 청년의 날 일회성 행사나 단순 지원금 지급에 그치는 땜질 처방을 넘어 첫 경력 형성을 체계적으로 보장하는 공공의 디딤돌을 단단하게 놓아야 한다.

 

청년들에게 첫걸음을 내디딜 권리를

 

첫 출발선에 선 청년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완벽한 실무 스펙이 아니라 배우고 실패하며 다듬어질 수 있는 '기회' 그 자체다. 아무도 처음부터 능숙한 직업인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서 시작할 기회마저 앗아간다면 그 사회의 미래 노동력은 고갈될 수밖에 없다. 추석 밥상의 불편한 시선을 피해 스터디카페에서 홀로 밤을 새우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냉정한 자격 증명서나 하루짜리 축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서투름을 감수할 최소한의 관용과 첫 출발의 문을 열어줄 차례다.

 

 

김영 사례연구원
vudghk8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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