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의 끝이 아닌 자립의 시작, 청소년 쉼터의 역할 재조명 I
청소년 쉼터는 가정에서 탈출하거나 노숙 위기에 처한 위기청소년들에게 “안전망” 역할을 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쉼터들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가출을 경험한 청소년 10만5665명 중 쉼터에 입소한 청소년은 5827명(5.5%)에 불과하다. 쉼터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위기청소년들이 쉼터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청소년쉼터가 위기청소년 보호의 출발점이 아닌 일시적인 종착점으로 머물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통계다.
국내 청소년쉼터의 현황과 기능
우리나라에는 여성가족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 아래 여러 유형의 청소년쉼터가 운영되고 있다. 2023년 기준 전국에 138개소의 청소년쉼터가 있으며, 이 가운데 105개소는 중·장기 쉼터로 분류된다. 쉼터에서는 일정 기간 청소년을 보호하면서 의식주를 제공하고, 상담과 생활지도, 학업 및 직업훈련 연계를 시도한다. 쉼터 유형별로 긴급 보호를 위한 일시쉼터, 단기간 머무르는 단기쉼터, 비교적 장기간 보호하는 중장기쉼터로 나뉘어 청소년의 상황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컨대 경기도의 경우 2023년 현재 17개 시·군에 일시쉼터 6곳, 단기쉼터 18곳, 중장기쉼터 8곳 등 총 32곳을 운영 중이다.
쉼터의 주요 기능은 가정 밖 청소년(‘가출청소년’으로 불리던 이들을 포괄하는 용어)을 일시 보호하고 상담 및 자립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쉼터에 입소한 청소년들은 먹을 곳, 잘 곳을 제공받을 뿐 아니라 전문 상담자와의 상담, 의료 서비스 연계, 학업 복귀 지원, 직업훈련 및 자립 준비 교육 등을 받을 수 있다. 청소년들은 쉼터를 통해 일시적으로나마 안전한 공간에서 생활하며 앞으로의 진로를 모색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쉼터는 위기청소년에게 “사회적 응급실”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현실에서 쉼터를 찾는 청소년들은 가족 갈등이나 가정 폭력으로 인해 집을 떠나온 사례가 많다. 실제 쉼터 입소 청소년 중 약 70%는 가족과의 갈등, 49.4%는 가족 폭력을 피하기 위해 가출했다고 응답했다. 이는 쉼터가 단순한 일탈 청소년의 보호소가 아니라, 가정 자체가 위기인 청소년들을 구제하는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쉼터 실무자들 역시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위험한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 사명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정서 회복과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 청소년쉼터의 한계와 제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청소년쉼터가 제 역할을 다하는 데에는 여러 한계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문제가 입소 절차상의 제약이다. 현행 여성가족부 지침상 청소년쉼터에 청소년이 들어오려면 부모 등 보호자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이 실질적인 장벽으로 작용한다. 가정 폭력이나 학대로부터 도망쳐 나온 청소년의 경우 부모에게 자신의 소재를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꺼려지는 일이다. 결국 이러한 규정 때문에 정작 도움이 절실한 청소년들이 쉼터 문턱에서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한 국회의원의 지적에 따르면, 가해 부모를 피해 온 아이가 부모 동의 없이는 쉼터 입소가 안 되는 현실은 제도 개선이 필요한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24년 임미애 의원 등 일부 입법자들은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가정폭력·아동학대 등의 사유로 집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청소년에게는 보호자가 반대하더라도 쉼터에 입소할 수 있게 하고, 쉼터의 소재 등 정보를 보호자에게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부모의 동의 요건을 면제하고 청소년의 신변 안전을 우선 보장하려는 취지다. 이는 마치 일본의 사례와 유사하게, 법적 “부모 권한”보다 청소년 보호권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라 볼 수 있다.
운영 측면에서도 인력과 예산 부족이 거론된다. 전국 쉼터 138곳을 통해 한 해 5천여 명을 돌보고 있지만, 이를 전담하는 인력과 재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다수의 쉼터가 비영리단체나 지방자치단체 위탁 형태로 운영되면서 상근 인력은 최소화되어 있고, 야간이나 주말에는 교대 인원이 충분하지 않은 곳도 있다. 한편 청소년 1인당 지원 예산도 충분치 않아, 제공할 수 있는 프로그램(학업, 직업훈련, 치료 등)에 제약이 생긴다. 이렇다 보니 쉼터에서 지낸 청소년이 장기적인 자립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일시적으로 보호받는 데 그치기 쉽고, 퇴소 후 다시 위기에 빠질 위험이 있다. 실제로 쉼터 퇴소 청소년이 갈 곳이 마땅치 않아 노숙하거나 범죄에 노출되는 경우도 사회복지 현장에서 종종 보고된다.
또 다른 한계는 사회적 인식과 연계체계의 부족이다. 청소년쉼터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부족하여, 정작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이나 부모들이 쉼터 존재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위기청소년을 조기에 발견해 쉼터로 연계하는 시스템(CYS-Net 등)은 구축되어 있으나, 현장 교사나 경찰 등이 쉼터보다 선도나 처벌 위주로 접근하는 관행도 남아 있다. 아울러 쉼터에서 일정 기간 보호 후 그 다음 단계로 연계되는 체계가 미흡하여, 청소년이 쉼터 퇴소 후 갈 수 있는 중간그룹홈이나 자립 지원 시설이 충분치 않다.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자립을 도와주는 전담시설인 청소년자립지원관 및 심리치료를 위한 회복지원시설 등을 운영하고 있으나 수가 매우 적어 대다수 쉼터 퇴소 청소년들에게 닿지 못하는 실정이다.
요컨대 국내 청소년쉼터는 위기청소년들에게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왔지만, 법·제도적 제약과 자원 부족, 그리고 사후 연계 미흡으로 인해 “일시 보호소” 수준에 머무르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 쉼터를 청소년 회복과 자립의 출발점으로 삼기 위해서는 국내외 사례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해외 주요국의 쉼터 운영 방식과 자립 연계
세계 각국은 가정 밖 청소년을 보호하고 자립까지 도와주기 위해 다양한 접근을 취하고 있다. “쉼터는 시작인가, 종착점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도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과 유사한 문제를 겪으면서도 혁신적인 대안을 마련한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청소년쉼터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데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 미국: 연방 법률에 따라 청소년 쉼터를 체계화. 미국은 일찍이 가출 및 노숙 청소년법(Runaway and Homeless Youth Act)을 제정하여 연방 차원의 지원 체계를 구축했다. 이에 따라 지역사회 기반의 비영리기관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아 단기 보호소부터 장기 자립생활 프로그램까지 단계별 쉼터를 운영한다. 예를 들어 만 18세 미만 청소년을 위한 기본센터 프로그램 (Basic Center Program)은 최대 21일간 긴급 숙식을 제공하면서 가족 관계 회복이나 임시 보호를 지원하고, 16~21세 청소년을 위한 전환생활 프로그램 (Transitional Living Program)은 성인 지도 감독하의 주거공간에서 최대 18개월간 생활하며 생활기술 훈련과 교육·취업 지원을 받도록 한다. 예컨대 TLP에서는 안전한 장기숙소, 개별 및 집단 상담, 생활 기술 훈련, 대인관계 능력 개발, 학업 및 직업 역량 향상 프로그램까지 통합적으로 제공하여 청소년이 자립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다층적 지원 덕분에 미국의 청소년 쉼터는 단순 보호를 넘어, 사회 복귀와 자립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지향하고 있다.
⚫ 일본: 민간 주도의 ‘어린이 쉼터(子どもシェルター)’와 자립 지원 홈.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가정폭력 등으로 가출한 청소년들을 공식 보호하는 데 부모의 권한(親権)이 걸림돌이 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00년대부터 변호사와 사회복지사가 협력한 민간 ‘어린이 쉼터(子どもシェルター)’가 등장했다. 카리욘(카리용) 등의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는 이 쉼터들은 후생노동성의 인가를 받아 자립원조시설(自立援助ホーム) 형태로 긴급 보호를 수행한다. 현재 도쿄 등 일본 전역에 10여 곳(2023년 기준 약 16곳)의 민간 쉼터가 운영 중인데, 가정에 “있을 곳 없는” 10대 후반 청소년을 1주일에서 최대 2개월까지 보호하면서, 이후 자립을 위한 다음 단계(예: 자립지원 홈, 직업학교 입학 등)로 연결해준다. 일본도 공적 기관인 아동상담소(児童相談所) 산하에 일시보호소가 있지만 도시 지역에서는 정원이 포화상태여서 긴급 보호에 한계가 있다. 민간 어린이쉼터는 이러한 공백 속에서 학대 피해 청소년을 신속히 보호하고, 법률 조력을 통해 부모 동의 없이도 아이를 지킬 수 있는 안전지대를 마련했다. 아울러 쉼터 퇴소 후에는 자립원조홈이나 자립지원 프로그램으로 연계해, 청소년이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일본의 사례는 민간과 법조계, 복지계가 협력하여 쉼터를 긴급피난처이자 자립의 징검다리로 활용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 핀란드: 주거 우선(Housing First) 접근으로 자립 지원. 핀란드는 청소년 주거 문제를 사회적 주택정책과 연계하여 해결한 대표적인 나라다. 핀란드에서는 청소년 노숙을 줄이기 위해 정부와 비영리단체가 협력하여 저렴한 청년 임대주택을 대거 공급하고, 필요시 상담·재정교육 등 떠밀려 나간 청년을 돕는 유동적 지원(floating support)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컨대 핀란드 청년주거협회(NAL)는 정부 지원을 받아 청년용 임대 아파트 4,300여 세대를 운영하며, 입주 청년에 대해 주거 코치, 생활지도, 채무·취업 상담 등을 제공한다. 이 중 일부 주택은 특별히 취약한 청년(이전에 노숙 경험이 있거나 보호종료된 청년 등)을 위해 지원주택으로 배정하고, 전문 사회복지사가 정기적으로 찾아가 돕는다. 이러한 주거 지원 덕분에 핀란드는 1980년대 2만 가구에 달하던 전체 노숙 가구 수를 최근 5천 가구 미만으로 감소시켰으며, 청소년 노숙 문제도 매우 낮은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 핀란드 적십자에서도 헬싱키 등지에서 24시간 청소년 쉼터를 운영하지만, 이 역시 단기 쉼터 → 장기 임대주택 연계로 작동하여 청소년들이 영구적인 주거와 자립을 얻도록 돕는다. 핀란드의 경험은 “쉼터 이후 갈 곳”을 마련해주는 것이 청소년쉼터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핵심임을 보여준다.
⚫ 영국·프랑스: 교육·고용과 연계한 포이어(Foyer) 모델. 프랑스에서는 2차대전 후 도시로 이주한 청년 노동자들을 위해 생긴 기숙사 개념인 포이어(Foyer)가 현대적으로 발전하여, 주거+교육+고용 지원을 결합한 청년 지원주택 모델이 확립되었다. 영국은 1990년대 청년 실업과 노숙 문제가 대두되자 “직업이 없으면 집도 없다, 집이 없으면 직업도 없다”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이 프랑스식 포이어 모델을 적극 도입했다. 현재 영국 전역에는 수십 곳의 포이어 센터가 운영되어, 집을 잃은 16~25세 청년들에게 저렴한 기숙사형 주거를 제공하면서 개인별 코칭, 생활기술 교육, 학업 지속이나 직업훈련 참가를 조건부로 연계하고 있다. 포이어 거주자는 숙식을 해결하는 동시에 센터 내에서 직업훈련 프로그램이나 학위 취득 과정에 참여하여 미래를 준비하게 된다. 일정 성취를 이루면 포이어를 졸업하고 일반 주택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데, 이를 위해 지방정부와 주택협회가 협력하여 공공임대주택 우선 배정 등 혜택도 준다. 프랑스와 영국의 포이어 모델은 청소년 쉼터를 “단순 쉼”의 공간이 아닌 “성장과 도약”의 공간으로 설계한 사례다. 이 모델이 성공하면서 호주, 캐나다, 미국 등지에도 유사한 청년 트랜지셔널 하우징 프로그램이 확산되었다.
⚫ 독일: 법적 뒷받침과 장기 보호 연계. 독일은 청소년 보호를 국가와 지방정부의 법적 의무로 규정한 대표적 국가로, 청소년복지법(SGB 8)을 통해 만 18세 이후까지도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 각 지방자치단체의 청소년 복지국(Jugendamt)은 24시간 운영되는 아동·청소년 긴급지원(Kinder- und Jugendnotdienst) 체계를 두어 위기 발생 시 즉각 안전한 장소로 청소년을 보호한다. 대도시마다 운영되는 이 긴급 쉼터에서는 경찰이나 상담전화 등을 통해 구조된 청소년에게 즉시 숙식과 응급상담을 제공하고, 이후 필요한 경우 가정 복귀를 중재하거나 다른 보호시설로 안내한다. 특히 독일 법은 청소년이 18세가 넘어 성인이 되더라도 만 21세까지(특별한 경우 27세까지) 지원을 연장하도록 명시하고 있어, 쉼터를 나온 후에도 일정 기간 주거 지원, 직업 교육, 심리 상담 등의 후속 지원을 받을 수 있다. 21세 이전에 지원이 종료되어도 추후 필요시 다시 지원을 신청할 권리도 청년들에게 보장된다. 이처럼 법적 권리로서의 지원이 뒷받침되는 독일에선 청소년쉼터에 들어오는 것이 곧 공적 보호 시스템에 편입됨을 의미하며, 이후 자립과 사회정착에 이르는 장기 로드맵이 제도화되어 있다. 그 결과 쉼터는 단기 보호 이후에도 청소년을 계속 붙들고 케어를 이어가는 출발점으로 기능한다. 이를 통해 보호 종료 청소년들이 곧바로 노숙인이나 실업자로 전락하는 비율을 낮추는 효과를 보고 있다.
이처럼 해외 주요국의 청소년쉼터는 한국과 비교해볼 때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드러난다: 첫째, 법과 제도로 뒷받침된 보호 연령 연장(독일, 일본 등)이나 전국적 프로그램(미국)으로 쉼터 입소 문턱을 낮추고 지속 지원한다는 점, 둘째, 주거 지원과 자립 프로그램의 연계(핀란드, 영국 등)로 쉼터 -> 주거 -> 교육/고용의 경로를 체계화하고 있다는 점, 셋째, 민관 협력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일본의 변호사 쉼터, 핀란드의 NGO 임대주택 등)하는 점이다. 결국 해외에선 쉼터를 “위기의 시작점”으로 삼아 이후 회복과 자립 단계까지 끌어주는 트랙(Track)이 존재하며, 쉼터는 그 출발 단계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회복과 자립의 플랫폼이 되기 위한 개선 방안
청소년쉼터가 단순한 보호소를 넘어 청소년 회복과 자립의 플랫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정책적 · 사회적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국내외 사례를 종합해 볼 때, 다음과 같은 다각도의 개선 방안이 제안된다.
1. 입소 절차 개선 및 법적 권리 보장: 가정 폭력 등 위기 상황의 청소년은 부모 동의 없이도 쉼터에 입소할 수 있도록 법·지침을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 또한 쉼터 입소 청소년의 보호를 위해 부모에게 쉼터 위치를 알리지 않는 등 신변 보호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독일처럼 청소년 보호를 국가의 책무로 명시하고, 만 18세 이후까지 입소 지원이 연장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2. 청소년쉼터 수용력 확충 및 서비스 질 제고: 전국적으로 쉼터의 절대량을 늘리고 지역 편차를 줄여,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이면 누구나 가까운 곳에서 즉각 보호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예산 지원 확대가 필수적이다. 아울러 쉼터당 전문 상담인력과 야간 인력을 충원하고, 쉼터 종사자 처우를 개선하여 운영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서비스 내용 측면에서는 기본 의식주 제공을 넘어 정신건강 치료, 학업 지원, 직업 훈련 등 프로그램을 내실화하고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예산과 인력이 확보된다면 청소년 1인당 맞춤형 사례관리를 통해 회복과 성장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3. “쉼터-이후” 연계시스템 구축: 쉼터에서 생활하는 기간이 끝난 뒤 청소년들이 곧바로 자립하거나 안전한 거처를 찾지 못하면 보호의 효과가 반감된다. 따라서 자립지원관과 중간그룹홈을 대폭 확충하고, 기존의 청소년 자립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하여 쉼터 퇴소 -> 자립준비 -> 자립 정착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영국의 포이어나 미국의 TLP처럼, 일정 기간 숙식을 제공하면서 의무 교육·훈련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고 사회기술을 길러주는 전환숙소 모델을 국내에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거 취약 청년에 대한 공공임대주택 우선 배정이나 주거비 보조 등의 정책을 연계하여, 쉼터 청소년이 퇴소 후 거리로 내몰리지 않고 안정적 주거를 확보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4. 조기 발견 및 지역사회 협력: 위기청소년이 쉼터까지 오게 하지 않고도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일찍 개입할 수 있도록 예방 안전망을 촘촘히 해야 한다. 교사, 경찰,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청소년안전망(CYS-Net)의 활성화를 통해 가출 등 위기 징후가 발견될 때 즉시 상담센터나 쉼터로 연결하도록 시스템을 운용해야 한다. 이때 학대피해가 의심되는 경우 아동보호 전문기관 및 수사기관과도 연계하여 아이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확보해야 한다. 더불어 지역사회 주민들도 청소년 쉼터를 신뢰할 수 있는 이웃 공동체로 인식하도록 홍보하고, 멘토 봉사나 일자리 연계 등 다양한 형태로 참여를 유도하면 청소년의 사회적 고립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5. 인식 개선과 탈 낙인화: 청소년쉼터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도 중요하다. 아직까지 일부에서는 쉼터 입소 청소년을 비행 청소년으로 낙인찍거나, 쉼터를 시설 보호의 부정적 이미지로만 보는 시선이 있다. 이러한 낙인을 없애기 위해 성공적인 자립 사례를 발굴해 알리고, 언론의 보도 역시 청소년들의 어려운 처지를 공감하며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3년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등 주요 언론의 사설도 위기청소년 보호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제도 보완을 촉구해왔다. 예컨대 한 사설에서는 “국가는 가정이 돌보지 못하는 청소년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며, 보호자 동의 요건으로 인해 쉼터 입소를 꺼리게 되는 현재의 한계를 비판했다. 이러한 여론을 바탕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쉼터 정책 개선의 추진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청소년쉼터는 위기의 청소년을 살리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그러나 그 역할은 단순한 임시 대피소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국내 청소년쉼터의 현실은 아직 많은 과제를 안고 있지만, 다행히 변화의 움직임도 시작되고 있다. 법 개정 논의와 예산 확충 노력, 그리고 현장에서 땀 흘리는 종사자들의 헌신이 모인다면 쉼터는 “청소년을 위한 재도약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위기청소년 한 명 한 명이 쉼터에서 희망을 되찾아 자립의 길로 나아가는 사회, 그리하여 “쉼터는 새로운 시작”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