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의 끝이 아닌 자립의 시작, 청소년 쉼터의 역할 재조명 II
위기청소년: 가정 밖으로 내몰린 아이들, 늘어나는 ‘위기’
“위기청소년”은 가정 문제나 학업·사회적 부적응 등으로 건강한 성장을 위한 기본적 여건을 갖추지 못한 청소년을 뜻한다. 이들은 빈곤, 가정 폭력, 학대 등 다양한 이유로 집과 학교를 벗어나 거리로 내몰리기 쉽다. 실제로 한 조사에서 청소년 600명 중 66.3%가 한 번 이상 가출을 경험했고, 최근 1년 내 가출한 경우도 40.7%에 달했다. 가출 사유는 “부모·형제 등 가족과의 갈등”이 63%로 가장 많았고, “가족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가출했다는 응답도 30%에 이르렀다. 이렇듯 가정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청소년들은 거리를 떠돌며 각종 위험에 노출된다. 위기청소년 절반가량이 부모나 보호자로부터 신체적·언어적 폭력을 겪었고, 10명 중 1명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조사도 있다.
가출 이후 이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은 더 가혹하다. 집을 나온 청소년들은 대개 친구 집이나 값싼 숙소를 전전한다. 설문에 따르면 41.2%는 여관·모텔에 머물렀고, 37.7%만이 청소년 쉼터를 이용했다. 찜질방·PC방 등에서 지낸 경우도 32.9%, 길거리에서 노숙을 한 경우도 23%나 됐다. 즉 상당수 위기청소년들이 공식 보호망 바깥에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경찰에 접수된 9~19세 실종·가출 신고도 2020년 20,875건에서 2022년 27,865건으로 증가하며 위기청소년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우울증, 불안 등 심리·정서적 위기를 호소하는 청소년도 늘었다. 이러한 위기청소년들은 적절한 개입과 보호 없이는 범죄 피해나 비행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학업 중단과 실업, 노숙의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크다. 이제 이들의 “안전망”이자 “마지막 보루”인 청소년 쉼터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청소년 쉼터의 역할: 위기에서 보호하고 미래를 준비시키는 공간
청소년 쉼터는 가정 밖 청소년들을 일시적으로 보호하며 상담과 주거, 학업, 자립 등을 지원해 가정·학교·사회로의 복귀를 돕는 시설이다. 전국에 130여 곳 넘게 운영 중인 쉼터들은 위기청소년을 위한 24시간 긴급 피난처 역할을 한다. 거리에서 방황하는 청소년을 발견하면 즉각 보호하고 먹을 것과 잘 곳을 제공하며, 심리 상담과 의료 지원으로 상처 입은 마음을 보듬는다. 또한 학교를 그만둔 아이에게는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취업을 원하는 아이에겐 직업 훈련과 진로 상담을 연결해준다. 필요 시 가정으로 복귀 중재를 하거나, 학대 피해 등으로 집에 돌아가기 어려운 경우 지자체 복지시설이나 후견인과 연계해 안전한 대안을 찾는다. 이렇듯 쉼터는 위기청소년의 즉각적인 보호와 장기적인 성장 지원을 아우르는 다기능 안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
쉼터는 운영 목적과 보호 기간에 따라 일시쉼터, 단기쉼터, 중·장기쉼터로 나뉜다. 일시쉼터는 최대 7일 이내의 응급 보호를 제공하며, 단기쉼터는 최대 3개월(필요시 3개월씩 2회 연장, 최장 9개월)까지 머물며 상담·치료 등의 단기 지원을 한다. 중·장기쉼터는 최대 3년까지 (1년 추가 연장 시 최장 4년) 보호하면서 생활 환경의 안정을 돕고 학업과 자립 준비를 지속적으로 지원한다. 특히 중장기쉼터의 경우 청소년이 충분한 기간 쉼과 성장을 병행할 수 있어, 학업 복귀나 검정고시 준비, 기술 배우기 등 자기계발의 기회를 갖게 된다. 정부는 이러한 쉼터 체계를 통해 한 해 수천 명의 위기청소년을 거리에서 구조하여 보호하고 있으며, 지자체 청소년지원센터(1388센터) 등과 연계한 상담·의료·자립 프로그램도 제공 중이다. 요컨대 청소년 쉼터는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안전한 ‘쉼’과 미래를 향한 ‘디딤돌’을 동시에 제공하는 소중한 공간이다.
청소년 쉼터의 현실과 한계: “보호 이후”가 더 큰 문제
물론 이상과 같은 역할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청소년 쉼터들이 인력·예산 부족, 퇴소 이후 지원 공백, 지역 간 격차 등 여러 현실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쉼터 내부의 문제와 쉼터 밖 연계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전문인력 부족과 열악한 운영 여건
쉼터 종사자들은 절박한 위기의 청소년들을 24시간 돌보고 지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낮은 임금과 과중한 업무로 인해 인력 유출이 심각한 실정이다. 한 현장 종사자는 “업무 강도에 비해 임금이 낮아 직원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다”고 토로했다. 밤에는 응급 상황 발생에 대비해 상주 인력이 필요하지만, “야간에는 많아야 2명, 적으면 1명이 당직을 선다”는 증언도 있다. 쉼터 하나에 평균 20명 안팎의 아이들이 생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인력 배치는 매우 불안정한 것이다.
정부의 예산 지원도 태부족이다. 여성가족부의 청소년쉼터 예산은 2021년 224억 원, 2022년 260억 원, 2023년 295억 원, 2024년 309억 원으로 최근 증가 추세이긴 하다. 그러나 쉼터 당 예산으로 나누면 인건비와 프로그램 운영에 턱없이 모자란 액수다. 노후한 시설 보수나 전문상담 인력 확충은 엄두도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서비스의 전문성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실제 일부 쉼터는 건물 설비가 낡고, 프로그램도 최소한의 돌봄 위주로만 운영되어 “청소년들을 보호한다기보다 잠시 재우는 수준”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쉼터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전문인력 충원과 운영 여건 개선이 시급하다.
2. 쉼터 퇴소 후 자립 지원의 공백
더 큰 문제는 쉼터를 나온 이후다. 쉼터는 어디까지나 임시 보호시설인 만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청소년들은 퇴소해야 한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아이들에게 그 다음 단계의 자립 지원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현실적으로 많은 청소년이 성인(만 18세)이 되기 전에 쉼터를 떠나야 하지만, 정작 자립지원 시설은 만 18세 이후부터 이용할 수 있어 퇴소 청소년들이 “갈 곳 없는 공백기”를 겪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보호시설에서 만 17세에 퇴소한 청소년은 아동복지법상 보호종료자가 아니어서 국가의 자립수당 등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사각지대에 놓였다. 이러한 제도 공백으로 인해 “원가정의 지원도, 국가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상당수 발생해왔던 것이다.
물론 최근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정부가 대응에 나섰다. 올해 2월 아동복지법 개정을 통해 18세 이전에 보호종료된 청소년도 자립수당 지급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대상이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과거 쉼터 등 다른 시설에 있다가 미성년으로 퇴소하여 지원을 못 받던 청소년들도 국가 지원을 신청할 길이 열렸다. 또 여성가족부는 청소년자립지원관을 확충하고 퇴소 청소년에게 월 40만 원씩 최장 5년간 자립지원수당 지급, 국가장학금 및 연합기숙사 연계 등의 대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에도 여전히 현장에서는 “퇴소 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한다”, “자립정착금이나 수당이 나와도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할지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즉 제도는 만들어졌어도, 이를 청소년 개개인이 잘 활용하여 자립으로 이어지게 하는 촘촘한 지원망이 부족한 현실이다.
특히 인프라 부족은 큰 걸림돌이다. 현재 전국에는 청소년자립지원관이 13개소에 불과하고, 학업이나 치료 등 추가 보호가 필요한 청소년을 돕는 청소년회복지원시설도 17개소밖에 없다. 지난 3년간 쉼터를 퇴소한 청소년은 매년 약 5천 명 안팎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을 받아줄 자립 지원 시설은 턱없이 모자란 셈이다. 실제 2023년 한 해 청소년쉼터를 퇴소한 청소년은 4,973명에 이르지만, 같은 해 청소년자립지원관과 회복지원시설을 퇴소한 인원은 합쳐도 300여 명 남짓에 불과했다. 상당수 퇴소 청소년들이 자립지원관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사회에 혼자 던져지고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자립지원관은 주로 수도권 등 도시에 편중되어 있어 지방 청소년들은 접근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쉼터→자립지원관→자립”으로 이어지는 보호 체계의 선형적 연결고리가 끊어져 있는 현실이며, 많은 퇴소 청소년들이 다시 거리의 위기로 내몰릴 위험에 놓여 있다.
3. 지역별 시설 격차와 지원 불균형
청소년 쉼터 자체의 지역 불균형도 문제다. 전국 쉼터는 2023년 말 기준 138곳이 운영 중이나,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다. 대도시인 서울·경기에는 여러 쉼터가 있지만 충남·전남·경북의 경우 단 한 곳의 일시쉼터도 없고, 부산에는 남자 청소년 중장기쉼터가, 전남에는 여자 청소년 중장기쉼터가 없는 실정이다. 어떤 지역은 청소년쉼터가 딱 한 군데뿐이어서 그 한 곳이 단기 보호와 장기 보호 역할을 모두 떠안는 사례도 있다. 이러다 보니 타지역으로 청소년을 보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하는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지면 “학업 등 생활에 문제가 발생”하는 등 청소년 입장에서는 또 다른 어려움이 따른다. 예컨대 지방 A군에 쉼터가 없어 인근 도시로 보내진 청소년은 전학과 기숙사 생활 등 생활환경이 크게 바뀌어 적응 스트레스를 겪을 수 있다.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중·장기 쉼터 입소 청소년의 주민등록 주소지를 쉼터로 이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학적 유지를 돕고 있지만, 아직 제도화가 미흡해 전국적인 시행까지는 갈 길이 멀다.
또한 지역에 따라 쉼터와 학교·의료·복지기관 간 연계 수준에도 차이가 있다. 네트워크가 잘 갖춰진 도심 지역 쉼터는 인근 학교 편입이나 심리치료 연계를 비교적 수월하게 해주는 반면, 농어촌 지역 쉼터는 인근에 대안학교나 전문상담 인프라가 부족해 청소년들이 양질의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 한 지방 쉼터 관계자는 “우리 지역에는 정신과 치료가 가능한 곳도 멀리 떨어져 있고, 보호자가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 치료에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했다. 실제 “쉼터로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청소년들이 많이 오는데, 가족이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조치가 어렵다”는 증언은 법적 후견인 문제와도 연결된다. 미성년자의 의료 동의나 진로 결정 등에 부모 동의가 필요하지만 정작 부모가 학대 가해자이거나 연락이 두절된 경우, 시설장이 ‘임시 후견인’으로 나서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현행 시설 후견인 지정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려, 정작 긴급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순간에 제도적 뒷받침이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역·제도 격차로 인해 쉼터 청소년들의 보호 수준에 편차가 생기고, 이는 곧 아이들의 삶의 궤적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해외 주요국의 청소년 보호·자립 연계 시스템 비교
우리보다 먼저 청소년 복지 선진화를 이룬 여러 국가들은 가출 청소년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성인 이행기에 맞춤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쉼터에서 자립으로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핀란드,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 각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쉼터는 자립의 출발점”이라는 인식 아래 다양한 제도가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미국: 연방 차원에서 「가출 및 노숙 청소년 법(RHYA)」을 제정하여 청소년 전용 쉼터와 자립훈련 주거프로그램을 지원한다. Basic Center라 불리는 단기 청소년쉼터는 청소년을 긴급 보호하고 가족과 재결합을 모색하며, Transitional Living Program(TLP)은 16~22세 청소년에게 최대 18~21개월간 거주 공간을 제공하며 독립 생활기술을 훈련한다. 예를 들어 커버넌트 하우스 등의 비영리기관들은 미 전역 24개 도시에서 TLP를 운영하며, 18~24개월 동안 안정된 주거와 사례관리, 학업·취업·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결과 프로그램을 수료한 청소년의 73%가 안정된 주거로, 69%가 취업 또는 학교로 연계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 핀란드: 북유럽 복지국가답게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통해 청소년의 가출 자체를 최소화한다. 학대·빈곤 등으로 가정에서 지내기 어려운 아이들은 국가가 조기에 개입해 위탁가정이나 그룹홈에서 지내도록 하며, 필요 시 부모와 분리해 보호 조치를 취한다. 이러한 조기 개입과 가족복지 시스템 덕분에 핀란드에서는 가출 청소년이 사회적 이슈로 크게 대두되지 않을 정도로 드문 편이다. 또 만약 가출하거나 보호가 필요한 청소년이 발생하면 지방자치단체 산하 아동복지기관(자치구 청소년복지국)이 즉시 보호하고, 18세 이후에도 희망 시 25세까지 후속 지원(aftercare)을 제공한다. 예컨대 상담사를 배정해 주거·취업을 도와주거나 대학에 진학하면 생활비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성인이 되어도 일정 연령까지 국가가 돌보는 체계가 구축되어 있다. 이러한 예방중심 접근 덕분에 핀란드 청소년들의 주거 불안정률과 노숙인 비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 일본: 우리와 문화적으로 유사하지만 청소년 자립지원 시스템은 한발 앞서 있다. 일본에는 학대 등으로 가정에 머물 수 없는 청소년들이 공동생활을 하며 자립을 준비하는 ‘자립원조 홈’(自立援助ホーム)이라는 시설이 전국에 300여 곳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만 15세~20세 청소년들이 생활지도사와 함께 생활하면서 고교 학업을 이어가거나 취업훈련을 받는다. 일본 정부는 2016년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이러한 자립지원홈 등 시설보호와 자립프로그램을 연계했고, 2022년에는 지원 대상 연령을 확대하여 시설 퇴소 후 22세까지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각 지역에 자립지원 코디네이터를 두어 보호종료 청년의 취업·주거·정신건강을 종합 상담·지원하며, 자립준비금도 한국보다 많은 약 60만 엔(약 600만 원)을 지급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일본은 최근 보호종료 청소년의 범죄 연루율과 노숙 발생률을 낮추는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청소년 자립은 국가 책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 독일·프랑스: 가족복지와 아동보호 제도가 발달한 유럽 대륙 국가들로, 아예 가출 청소년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소하다. 문제 가정의 아동이 방치되거나 학대를 받으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즉각 개입해 아이와 부모를 분리 보호하고, 그룹홈이나 위탁가정에서 지내도록 한다. 독일은 청소년복지국(Jugendamt)이 해당 아동의 법정 후견인이 되어 18세 이후까지도 지원하며, 프랑스도 ASE(아동사회원조) 제도를 통해 보호아동이 성년이 된 후 21세까지 주거·직업훈련을 지원한다. 그 결과 이들 국가에서는 부모와 살지 않는 청소년도 안정된 주거와 후견 아래 생활하며, 거리로 나앉는 일이 극히 드물다. “독일, 프랑스에는 가출 청소년이란 말 자체가 거의 없다”는 평가처럼, 국가가 사실상 청소년 “부모” 역할을 끝까지 책임지는 셈이다.
⚫ 영국(잉글랜드): 보호종료 청소년(Care Leaver) 지원의 선구적 모델을 갖추고 있다. 영국은 2000년 「청소년(떠나는 보호)법」을 통해 모든 보호종료 청년에 ‘개인 자립지원 상담사(PA)’를 배정하고, 이들이 25세가 될 때까지 주거·교육·취업 등을 도와주도록 의무화했다. PA 한 명이 약 20명의 청년을 사례관리하며 정기적으로 연락을 유지하고, 필요한 경우 지방정부와 협의해 공공주택 제공, 취업 알선, 심리상담 등 서비스를 연결한다. 보호종료 청년은 18세 이후에도 PA를 통해 대학 등록금 지원, 훈련수당, 생활비 지원금 등을 신청할 수 있으며, 본인이 원하면 21세 이후에도 25세까지 PA 지원을 계속받는다. 이러한 제도로 영국은 보호종료 청소년의 주거 상실률을 크게 낮췄고, 많은 청년이 20대 중반까지 안정적으로 사회에 정착할 수 있었다. 영국 사례는 전담 인력을 통한 밀착 지원의 효과를 보여주며, 한국에도 자립지원 전담요원 제도 신설 등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외에도 캐나다는 각 주(州)별로 청소년 쉼터와 자립훈련센터를 운영하며, 호주는 25세 미만 청년에 공공주택 우선 배정과 생활코치 배치를 제도화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해외 사례들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청소년 보호는 단순 ‘일시 보호’에 그쳐서는 안 되며, 성인이 될 때까지 (혹은 그 이후까지) 이어지는 연속적 지원체계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호의 끝이 아닌 자립의 시작’을 위해: 이어지는 돌봄, 끊어지지 않는 지원
“쉼터는 보호의 끝이 아닌 자립의 시작”이라는 말처럼, 이제 청소년 쉼터를 독립된 종착점이 아닌 통합적 지원체계의 한 출발점으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위기청소년을 단기간 보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성인으로 성장하여 자립하기까지 긴 호흡으로 돕는 연계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변화와 노력이 요구된다.
첫째, 쉼터-자립지원 시설 간 연계 고리를 촘촘히 이어야 한다. 쉼터 퇴소 청소년이 바로 거리로 나앉지 않도록 자립지원관, 회복지원시설 등의 숫자를 대폭 확충할 필요가 있다. 현재 13개소에 불과한 청소년자립지원관을 권역별로 최소 2~3배 이상 늘리고, 쉼터 퇴소 예정 청소년이 우선 입소할 수 있도록 연계 프로세스를 공식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쉼터에 있는 동안 자립지원관 담당자와 미리 매칭하여, 퇴소 즉시 그 시설로 이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기존에 보호종료 청년에만 적용되던 자립수당, 주거지원 등의 혜택을 쉼터 퇴소 청소년에게까지 폭넓게 확대하고, 신청 절차도 간소화하여 누락되는 아이들이 없게 해야 한다. 올해부터 18세 미만 퇴소 청년도 자립수당 지원이 가능해진 것은 긍정적 변화이므로, 실제 현장에서 모든 해당 청소년이 빠짐없이 지원받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홍보가 필요하다.
둘째, 법·제도 개선을 통해 “돌봄의 단절”을 해소해야 한다. 현행법상 청소년쉼터는 여성가족부 소관, 아동양육시설은 보건복지부 소관 등으로 보호체계가 이원화되어 있다. 이로 인해 일부 청소년은 부처 간 책임공방 속에 지원의 공백을 겪기도 했다. 앞으로는 위기청소년 통합지원 관점에서 부처 협력을 강화하고, 9세~24세 청소년을 연속성 있게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청소년 사회안전망 특별법” 등을 제정하여 쉼터, 그룹홈, 자립지원관 등을 아우르는 공동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아울러 시설 후견인 제도도 손봐야 한다. 쉼터 청소년 중 상당수는 부모와 연락이 끊기거나 학대 가해자와의 법적 분리가 필요한 경우인데, 현재는 쉼터장이 후견인이 되려 해도 법적 절차가 까다로워 학적 이전, 진료 동의 등에 애로가 많다. 따라서 시설 종사자가 보다 쉽게 미성년 후견인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법원을 통한 후견인 선임 요건을 완화하거나 일괄 지정하는 패스트트랙이 요구된다. 이는 청소년의 학업 지속이나 긴급 치료 결정에 실질적 도움을 주어, 더 이상 법의 빈틈으로 아이들이 피해보지 않게 할 것이다.
셋째, 청소년 쉼터의 전문성 강화와 인식 개선에 힘써야 한다. 쉼터가 단순 보호소를 넘어 자립훈련의 장(場)으로 기능하려면, 거기에 걸맞은 전문 인력과 프로그램이 확보되어야 한다. 정부는 예산 지원을 늘리는 한편, 청소년지도사 처우 개선과 전문교육을 통해 쉼터 종사자의 사기를 높이고 장기근속을 유도해야 한다. 쉼터별로 심리치료, 법률 지원, 직업체험 등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지원하고, 우수 사례를 발굴·확산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컨대 어떤 쉼터에서 요리사, 미용사 등 멘토를 초청해 기술 교육을 했더니 다수 청소년이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업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쉼터 생활을 의미 있게 보내게 만든다. 정부와 지자체는 전국 쉼터의 우수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예산을 차등 지원함으로써 모든 쉼터가 성장 플랫폼으로 거듭나도록 유도해야 한다.
넷째,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과 예방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우선 위기청소년에 대한 낙인(stigma)부터 걷어내야 한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가출 청소년을 비행 청소년이나 문제아로 치부하지만, 이면에는 가정과 사회의 책임이 존재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처럼, 위기청소년 문제는 그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과제이다. 정부뿐 아니라 학교, 이웃, 기업이 협력하여 청소년을 두 번 버리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멘토링 봉사를 활성화해 일반 가정의 어른들이 쉼터 청소년과 1:1 결연을 맺고 정서적으로 지원한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 나아가 가정 위기 자체를 줄이는 사전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족 갈등이나 학대가 발견되면 즉각 개입해 상담치료와 긴급보호를 제공하고, 필요하면 부모 교육이나 생계 지원까지 결합해야 한다. 독일이나 북유럽처럼 “문제가 터지기 전에 국가가 먼저 다가가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애초에 청소년이 거리로 나오는 일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가정, 학교,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촘촘한 청소년 안전망을 구축해 “가출 청소년 제로(zero) 사회”를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

“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온 사회가 나서야 한다”는 말이 있다. 청소년 쉼터에서 보호받는 아이들은 이미 한 번 상처받은 약자들이다. 이들에게 쉼터 문을 나서는 순간 또다시 “세상은 너를 버렸다”는 메시지를 줘서는 안 된다. 보호의 끝은 곧 자립 지원의 시작으로 이어져야 하며, 그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위기청소년 한 명 한 명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은 결국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게 하는 투자이기도 하다. 청소년 쉼터를 일시적 대피소가 아닌 자립의 출발점으로 재인식하고, 정책 담당자부터 현장 종사자,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지혜를 모을 때다. “가정 밖 청소년도 우리 아이”라는 포용적 시선으로, 끊어지지 않는 보호와 지원의 릴레이를 이어간다면 누구도 홀로 버려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