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 나는 내 삶의 주인공도 아니라는 슬픈 깨달음
글: 김지후 사례연구원
그림: 김지유 사례연구원
청년의 한숨: 97년생 최지민(가명)

"나 진짜 일어나서 운 적도 있어. 너무 회사 가기 싫어서."
지민은 아침에 일어나 괴로워 울었다. 출근이 두려웠다. 그는 일터에서 괴로운 관계를 매일 마주해야 했다. 대표는 부정적인 감정을 그에게 날렸고 그는 그런 대표의 태도에 휩쓸렸다. 지민은 자신이 직원이기 때문에 대표의 부적절한 언행을 가만히 견뎌야 하는 일에 회의감이 들었다.
직업적 고민도 그를 힘들게 했다. 지민은 이 회사에서 4년간 출판 편집자로 일했지만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직장에서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편집 일이 자신에게 즐거운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일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도 고민이었다. 그는 스스로 주도적으로 일을 하길 바랐지만 정말 자신이 그런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그는 잠시 쉬어야겠다고 생각해 일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지민은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이사로 본가에서 독립해야 했다. 독립을 하려면 부모님의 전세금 지원이 필수적이었다. 집에서는 독립을 이유로 취업을 압박했다. 주변의 말도 그를 흔들었다. "공백이 있으면 나중에 연봉 못 높인다", "지금 때 놓치면 나중에 후회한다"는 말에 결국 그는 쉬지 못하고 다시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경력이 있으니 빠르게 재취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취업 시장은 생각보다 냉혹했다. 출판사 여러 곳에 지원했지만 면접 제의는 한 곳에서만 왔다. 어렵게 얻은 면접 기회에 정말 열심히 준비했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정규직 취업이 모두 실패하자 지민은 계약직으로 눈으로 돌렸다. 그러나 계약직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내가 쏟은 세월이 도움이 안 되는 느낌이야."
지민은 자신이 그동안 착실하게 계단을 올라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4년제 대학을 나왔고 높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한 직장에서 꾸준히 포트폴리오를 쌓았다. 하지만 취업 시장에 나온 뒤 회사에게 매번 받는 것은 탈락 문자였다. 계속되는 취업 실패에 지민은 편집자가 아닌 사무보조로 눈을 낮췄다. 하지만 마주한 건 직무에 비해 하이(High) 스펙이라 채용을 부담스러워하는 회사의 분위기였다.
이것도 저것도 안되자 지민은 괴로웠다. 이 사회에 자신의 자리가 없는 느낌이 들었다. 지민은 자신의 상황이 마치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다고 느꼈다. 이런 상황에 놓이니 그동안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사립고부터 시작해 대학, 직장 생활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을 충실히 쏟았지만 정작 지금 삶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 스스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의 현실은 자신이 쏟은 시간을 의미 없이 만드는 듯했다.
"그럼 난 뭐 하러 이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나는 그동안 이걸 왜 한 걸까?"
취업 스트레스로 지민은 잠을 못 잤다. '지금 돈도 못 벌고 있다는 생각',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출판사 퇴사 후 학예사 친구의 요청으로 박물관의 백서를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일은 일회성 프로젝트였지만 업무 강도가 높아 하루 종일 붙들고 일해야 했다. 그럼에도 지민은 자신의 생산성을 계속 검열했다.
이유는 당장 들어올 돈을 벌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서 편집 인건비는 프로젝트가 끝나는 연말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없다는 사실은 그에게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돌아왔다. 지민은 그동안 스스로 돈 중심의 생산성에 거리를 두어 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 논리에 휩쓸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생산성을 돈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이건 진짜 생산성에 대한 강박이야."
취업난으로 고생하던 지민은 얼마 뒤 취업에 성공했다. 연봉을 낮추고 출판 편집자 직무를 포기해서 얻을 수 있던 결과였다. 그는 출판사가 아닌 마케팅 대행사에 계약직으로 들어가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마케팅 기획을 하기 시작했다.
새 직장은 일이 많아 정신없이 돌아가는 곳이었다. 월급은 200만 원대 중반. 입사 전에는 지금 회사에서 주는 급여가 다른 회사 계약직 연봉에 비해 높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 프로젝트 투입 후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회사는 당연하게 계약직 업무가 아닌 일도 지민에게 시켰고 업무량이 매우 많아 계약직도 야근을 피할 수 없었다.
업무 강도가 높은 곳에 원하던 연봉과 직무를 포기하고 들어왔다. 취업 전에는 스트레스로 잠을 못 잤다. 하지만 막상 출근해 보니 뭔가 이상했다. 지민은 출근 후 편안해진 자신의 마음 상태를 발견했다. 그는 '아, 그래도 돈을 벌고 있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사람의 가치가 '일을 하냐 하지 않느냐', '돈을 버냐 벌지 않느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지만, 막상 자신은 스스로의 가치를 그런 기준에서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생산성. 지민은 자신을 향해 생산성이란 단어를 던졌다. 그는 새 직장에서 스스로의 생산성을 검열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지금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는 얼마만큼 생산성 있는 일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민은 스스로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무서웠다. 그는 처음 해보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스스로 '나 진짜 폐급인가?', '내가 지금 회사에 폐 끼치고 있나?'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생산성에 대한 강박이었다. 그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만약 예상치 못한 독립이 없었더라도 생산성에 대한 자기 검열 때문에 퇴사 후 쉬는 기간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느꼈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도 아니었던 거지. 휩쓸려 사니까 점점."
지민에게는 또 다른 두려움이 있었다. 이곳에서 자신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평가당한다는 압박이었다.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된 어느 날, 그는 직장 상사와의 점심 식사에서 다른 직원의 욕을 들었다. 그 순간 그는 이 사람에게 찍히면 회사에서 소위 '나락을 가겠구나'라고 느꼈다.
지민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말하는 일이 이곳에서는 위험한 일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싫어했다. 하지만 새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했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실제 마음과는 다른 말을 해야 했다.
지민은 지금처럼 하나씩 포기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도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학 시절 이런 서른 살이 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아등바등 사는 사람들이 한심하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런 모습이 돼있었다. 이제는 과거의 자신 같은 어린 친구들이 이런 그를 한심하게 바라볼 터였다.
"그동안 내가 욕하던 어른들과 똑같이 되어가고 있구나."
평범한 어른과 주인공. 그는 대학생 때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무척 괴로웠다. 하지만 여러 일을 겪고 나니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젠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향해 "당연히 나는 주인공이 아니지. 내가 뭐가 되겠어"라고 말했다. 이런 생각에 지민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잔에 소주를 따랐다.
"사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도 아니었던 거지. 휩쓸려 사니까 점점."
이렇게 말한 지민은 소주를 목 뒤로 넘기며 대학 시절에 많이 했던 생각을 머릿속으로 곱씹었다.
"내 인생은 진짜 가치 없구나. 볼품없구나. 나는 주인공이 아니었구나."
▶ 팀 NS: 김지유, 김지후, 남형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