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었음 청년'은 없다②…준비는 있었지만 증명은 어려웠다
드라마 보조 작가를 꿈꾸던 청년은 수개월간 프로젝트를 준비했지만 말미에 작품이 무산됐다. 독립 전시를 기획하던 청년은 생계를 위해 단기 노동을 병행하며 업계 사람들을 만났다. 책을 낸 청년은 차기작을 구상하며 자료를 모으고 있다.
서로 다른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분명 무언가를 하고 있으나 지원 사업 신청서 등 정부 양식의 제출 서류 앞에 서는 순간 사라진다. 경험은 있었지만 경력으로 남지 않는다.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쉬었음 청년’이라는 분류가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청년들의 삶은 취업과 미취업, 노동과 비노동으로 단순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생계와 탐색, 학습과 준비가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적인 상태가 보편화되고 있다.
청년 정책 연구를 위한 심층 인터뷰에 참여한 극작가 박수진(가명) 씨는 “그저 쉬고 있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딱히 할 말도 없다”고 표현했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도제식 아카데미를 다니고, 창작 활동을 준비하며 지냈다. 콘텐츠 업계 진출을 위해 보조 작가 추천을 받기도 했지만 프로젝트가 여러 차례 무산되면서 실제 경력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 청년 정책 연구를 위한 심층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이 자신의 준비 과정과 경력 공백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최근 청년층에서는 창작·학습·프로젝트 준비 등 결과로 환산되지 않은 활동이 늘고 있지만, 상당수는 제도상 '경력 없음' 또는 '쉬었음'으로 분류된다. [사진=생성형 AI]](https://kcbpaper.presscon.ai/prod/72/images/20260608/1780851579384_854700681.jpeg)
“분명 기회는 있었고 연결도 있었는데, 막상 지원서에 쓰려고 하면 남는 게 별로 없어요. 길게 설명은 할 수 있는데 증명은 어렵죠.” 박 씨의 말은 오늘날 문과·예술·콘텐츠 분야 청년들이 겪고 있는 구조적 공백을 드러낸다.
해당 분야의 진입 과정은 애초에 정규 채용과 공식 자격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작품은 무산될 수 있고 프로젝트는 지연될 수 있으며, 추천과 네트워크, 기획 경험과 창작 준비는 결과물이 되기 전까지 쉽게 문서화되지 않는다. 과정의 비중이 큰 분야일수록 청년의 시간은 더 자주 ‘경력 없음’으로 처리된다.
비슷한 문제는 이미 결과물을 만들어낸 청년에게도 나타난다. 팀 NS에서 함께 활동하는 김지후 씨는 책을 출간했으나 최근 예술인 지원사업에서 탈락했다. 출간 이후 이어진 차기작 집필 기획과 조사, 퇴고의 시간을 서류로 입증하기 어려웠다. 창작은 결과물 한 권으로 끝나지 않지만 제도는 종종 결과와 결과 사이의 긴 시간을 보지 못한다.
특정 분야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플랫폼 노동과 프리랜서, 계약직 중심의 노동시장이 확대되면서 청년들의 경력 형성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하나의 직업을 향해 직선으로 나아가기보다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탐색하고 조합하는 경로가 늘어나는 모양새다.
이 지점에서 '포트폴리오 청년'이라는 표현을 떠올렸다. 과거의 이력서가 하나의 직선적 경로를 기록하는 방식이었다면, 오늘날 많은 청년은 여러 경험과 시도를 병행하며 자신만의 경로를 만들어간다. 하나의 이력으로 설명되기보다 여러 과정이 축적돼 하나의 방향을 이루는 삶에 가깝다.
청년 정책은 '무엇이 되었는가'만 묻는 데서 나아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까지 살펴야 한다. 그래야 청년이 어떤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지, 어디에서 막혀 있는지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청년기는 원래 완성된 결과보다 탐색의 비중이 큰 시기다. 그러나 현재 제도는 그 과정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준비와 학습, 창작과 실험, 전환을 위한 모든 시간은 결과로 이어지기 전까지 종종 공백으로 분류된다.
청년의 삶은 점점 포트폴리오에 가까워지는데 이를 평가하는 기준은 여전히 단선적인 이력서에 머물러 보인다. 문제는 기준의 존재가 아니라 기준이 현실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경험을 동일하게 인정하자는 뜻은 아니다. 정책에는 객관성과 검증 가능성이 필요하다. 다만 청년들의 경로가 달라졌다면 이를 읽어낼 수 있는 기준 역시 함께 갱신될 필요가 있다. 현재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기준의 폐기가 아니라 현실에 맞는 정밀화다.
청년들은 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결과로 환산되지 않은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 팀 NS: 김지유, 남형주, 김지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