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가 작다는 것과 확장할 수 없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자본이 사업을 나누는 기준은 업종이 아니다. 같은 일을 다른 곳에서 다시 할 수 있는가다. 한 곳에서 잘되는 가게와 두 번째 매장을 열어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가게는 전혀 다른 사업이다. 업종이 같아도 이 기준에서는 갈리고, 업종이 달라도 이 기준에서는 같은 편에 선다.
그런데 제도는 창업을 다른 기준으로 나눈다. 한쪽에는 소상공인이 있고 다른 쪽에는 기술창업이 있다. 지원 대상 요건도 담당 기관도 심사 기준도 다르다. 현장에는 둘 중 어느 쪽으로도 깔끔하게 분류되지 않는 사업이 상당수인데, 제도의 칸은 두 개뿐이다.
동네에서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확장을 염두에 둔 가게가 그렇다. 기술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지만 반복 가능한 운영 방식을 가진 사업도 그렇다. 이들은 소상공인 지원에서는 규모가 애매하고, 기술창업 지원에서는 기술이 없다는 이유로 밀린다. 어느 쪽에서도 우선순위가 되지 못한다. 칸이 두 개뿐이면 그 사이의 사업은 매번 어느 한쪽으로 억지로 밀려 들어간다.
분류되지 않으면 어느 쪽 자본에도 닿지 못한다. 정책자금은 소상공인 요건에 걸리고, 투자는 기술창업의 언어를 요구한다. 사업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서류상의 위치 때문에 선택지가 좁아지는 구조다. 그리고 이 구조에 걸리는 사업이 지역에는 특히 많다.
골목의 가게가 브랜드가 되는 지점은 이 경계 위에 있다. 경계를 만드는 것은 맛이나 손맛이 아니라 표준화다. 누가 만들어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가. 재료가 바뀌어도 품질이 유지되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그 가게는 확장 가능한 사업이 되고, 자본이 볼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제조나 유통 파트너를 만나는 순간 필요해지는 것들도 정해져 있다. 원가 구조, 품질 편차의 범위, 공급의 안정성이다. 하루에 서른 그릇을 파는 일과 한 달에 3천 개를 납품하는 일은 다른 일이며, 그 차이는 대개 맛이 아니라 이 세 가지에서 생긴다. 준비 없이 큰 주문을 받았다가 무너지는 경우가 여기서 나온다. 감당하지 못한 주문 하나가 몇 해 쌓은 신뢰를 무너뜨리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지역의 음식이나 제품이 상품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면 병목은 늘 같은 자리에 있다. 만드는 방법을 계량으로 옮기는 일, 원재료의 공급처를 이중으로 확보하는 일, 그리고 성수기와 비수기의 편차를 감당할 생산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이 셋을 넘기면 나머지는 대체로 풀린다.
어느 문을 두드릴지 판단하는 기준도 여기서 나온다. 지금의 자리에서 더 잘하는 것이 목표라면 상권과 소상공인 지원이 맞다. 같은 것을 다른 곳에서 반복하는 것이 목표라면 창업지원과 투자 쪽의 언어를 익혀야 한다. 두 목표는 우열이 아니라 선택이며, 선택하지 않은 채 둘 다 두드리면 둘 다 어긋난다.
물론 모든 가게가 확장을 목표로 할 필요는 없다. 한 자리에서 오래가는 것도 완결된 목표이며, 그것이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방식도 분명하다. 문제는 확장하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못 하는 경우와, 확장할 생각이 없는데 그렇게 요구받는 경우가 둘 다 존재한다는 점이다. 확장을 원하지 않는 선택도 존중되어야 하고, 그 선택에 맞는 지원도 따로 있어야 한다.
민간 자본이 이런 사업에 붙기 시작하는 조건은 의외로 소박하다. 폭발적 성장이 아니라 반복되는 매출과 낮은 변동성이다. 매달 비슷한 금액이 들어오고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업은 규모가 작아도 검토 대상이 된다. 큰 성장을 약속하지 않아도 되는 자본이 실제로 존재한다.
특히 개인투자조합처럼 규모가 크지 않은 자본은 이런 사업과 맞는 구간이 있다. 수백억 규모의 성장을 전제하지 않아도 되고, 지역 안에서 결성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런 자본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현장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는데도 만나지 못한다.
기관의 프로그램에서도 이 중간지대는 자주 비어 있다. 소상공인 대상 교육은 마케팅과 상권 분석에 맞춰져 있고, 창업 프로그램은 기술과 시장 분석에 맞춰져 있다. 확장의 조건을 다루는 자리, 즉 지금의 성과를 어떻게 반복 가능하게 만들 것인지를 다루는 자리가 드물다.
제도가 이 중간지대를 잘 보지 못한다는 점은 지역 경제에서 특히 아쉬운 부분이다.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사업의 상당수가 바로 이 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본이 닿는 통로가 생기면 늘어나는 것은 창업 건수가 아니라 지속하는 사업의 수다. 그것이 지역 경제에는 더 중요한 숫자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예산이 아니라 기존 프로그램 안의 한 단원이다.
결국 규모가 작다는 것과 확장할 수 없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자본은 그 둘을 구분해서 본다. 제도도 그래야 하고, 창업가 스스로도 자기 사업이 어느 쪽인지를 먼저 정해 두어야 한다. 그 판단이 서면 어느 문을 두드릴지도 자연히 정해진다. 그 판단만큼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이태범 심바벤처스 대표이사·한국청년경제인협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