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서울청년센터 강북(청년사례연구소)

[청년커먼즈 ⑤] 나갈 때 빈손이 아닌 집

김지윤 사례연구원
입력
영국 '라일락(LILAC)'의 상호주택소유제가 던지는 질문

지난 글에서 관계와 돌봄을 이야기했다. 공간의 권한을 나누는 제도적 자산화를 넘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상을 나누는 운영체제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하지만 따뜻한 공동체가 만들어진 뒤에도 질문은 이어진다. 이 삶터는 무엇으로 지속되는가.

 

청년은 이동한다. 이직하고, 지역을 옮기고, 관계가 바뀐다. 그런데 그동안 매달 낸 월세는 어디로 갔을까. 짐을 싸는 순간 흔적도 없다. 오래 살수록 손해인 집.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집이 그렇다. 주거의 안정이란 머무를 권리만을 뜻하지 않을 것이다. 떠날 수 있는 조건까지 갖췄을 때 비로소 안정이 아닐까.

 

 

영국 리즈(Leeds)에는 라일락(LILAC)이라는 공동체주택이 있다. 2013년 완공된 20가구 규모의 코하우징 단지로, 상호주택소유제(Mutual Home Ownership Society, MHOS)를 영국에서 처음 실행에 옮긴 곳이다.

▲ 본 이미지는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AI로 제작된 이미지 입니다.

 

토지와 주택은 주민 조합이 소유한다. 주민은 오래 살 권리를 갖고, 매달 세후소득의 35%를 조합에 낸다. 돈은 관리비와 대출 상환으로 나가지만, 일부는 자기 지분으로 쌓이고 나갈 때는 그 몫을 가지고 나간다. 35%. 한국 기준으로는 과부담에 가까운 숫자다. 하지만 서울에서 원룸에 사는 청년도 이미 그쯤 내고 있다. 차이는 액수가 아니라 행방이다. 한쪽은 전액이 사라지고, 다른 쪽은 일부가 남는다.

 

목돈이 돌아온다면 전세와 무엇이 다르냐고 물을 수 있다. 두 가지가 다르다. 전세보증금은 넣은 만큼만 돌아온다. 그사이 물가가 오르면 실질 가치는 줄어든다. 반면 라일락의 지분은 임금 수준에 따라 조정된다. 그리고 전세는 2년마다 재계약을 협상해야 하지만, 이곳의 거주권은 흔들리지 않는다.

 

눈여겨볼 대목은 지분이 집값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손해 아닌가. 시세가 오르면 그만큼 못 버는 것 아닌가. 맞다. 이 집은 자산 증식을 포기한 집이다. 대신 먼저 들어온 사람의 이익이 뒤에 오는 사람의 진입장벽이 되는 일을 막았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 기회 대신, 부동산 때문에 밀려나지 않을 조건을 택한 셈이다.

 

여력이 있는 가구는 자기 집 원가보다 많은 지분을 떠안고, 사정이 빠듯한 가구는 그보다 적게 배정받는다. 같은 단지 안에서 서로를 받쳐준다. 고단열 설계로 난방비가 줄고 공용 주방과 텃밭을 함께 쓴다. 주거비가 방 한 칸의 값이 아니라 생활 전체의 비용으로 다시 계산되는 것이다.

 

돈은 여러 갈래에서 모였다. 조합원 자본, 장기 모기지, 공공지원금. 부지는 리즈 시의회에서 사들였다. 공공의 돈이 일부 들어갔지만 운영권은 주민 조합이 쥐었다. 지원과 통제가 분리된 것이다. 1편에서 던졌던 질문, 방은 주어졌는데 권한은 없더라는 문제에 대한 실마리가 여기 있다.

 

한국에도 비슷한 시도가 없지는 않다. 협동조합형 공동체주택에서는 조합원이 출자금을 내고 운영에 참여하며,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처럼 입주자가 주택의 일부 지분을 먼저 취득해 장기간에 걸쳐 자기 몫을 늘려가는 제도도 있다. 다만 아직은 얼마를 쌓고, 그 가치를 무엇에 연동하며, 공동체의 자산을 어떻게 다음 사람에게 이어갈 것인지까지 주민이 함께 설계하는 모델은 드물다. LILAC이 던지는 질문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물론 라일락도 완벽하지 않다. 초기 자본이 필요하고 소득 기준도 있다. 누구에게나 열린 집은 아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주거비를 사라지는 돈으로만 두지 않을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소유의 방식도, 운영의 방식도 하나가 아니다. 그 사이에 더 많은 상상이 놓이기를 바란다.

 

청년에게 필요한 건 방 한 칸이 아니다. 머무를 권리와 떠날 수 있는 힘. 둘이 함께 있을 때 주거는 비로소 삶이 된다. 집은 삶을 붙잡는 곳이 아니라, 다음 삶으로 건너가게 하는 곳이 될 수 있다.

 

 

필자는 도시커먼즈와 통합돌봄정책을 연구하는 독립연구자로, 카카오 브런치 매거진 《도시와 돌봄을 읽다》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LILAC, 「Affordable」 및 「Mutual Home Ownership: briefing note」, lilac.coop
UK Cohousing Network, 「LILAC: Low Impact Living Affordable Community」, cohousing.org.uk
RE-DWELL, 「LILAC — Low Impact Living Affordable Community, Leeds」 사례 아카이브
Co-operative News, 「Community-led projects to create sustainable homes in Leeds」(2023)

김지윤 사례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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