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중독인가 산업인가... 성남시 논란 속 ‘게임 질병코드’ 도입 논쟁 재점화
콘텐츠·관광·무역계 “K게임 수출 역풍 우려”
질병코드 도입, 국제분쟁 가능성 제기
게임을 알코올·약물·도박과 함께 ‘4대 중독’으로 분류한 성남시 주최 공모전이 게임업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국내외에서 지속돼온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성남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는 지난 16일부터 진행 중인 ‘AI를 활용한 중독예방콘텐츠 제작 공모전’에서 인터넷 게임을 중독 대상에 포함했다. “중독 없는 건강한 성남”이라는 주제로 알코올·약물·도박과 함께 인터넷 게임을 명시했으며, 이는 2013년 국회에서 논란이 됐던 ‘4대 중독법안’ 표현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업계는 성남시의 이번 표현이 시대착오적이고 편견에 기반한 행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성남시는 네오위즈, 넥슨, 스마일게이트, 엔씨소프트 등 국내 대표 게임사가 밀집한 지역으로, ‘게임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곳이다.
남궁훈 게임인재단 공동이사장은 SNS를 통해 “성남시가 게임을 4대 중독으로 규정하는 것은 산업에 대한 무지”라며, “게임사들이 밀집한 도시에서 공공기관이 게임을 사회문제로 지목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WHO는 국제질병분류(ICD-11)에서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했으며, 국내에서도 이를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정부와 의료계는 체계적인 치료와 연구를 위해 질병코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콘텐츠 업계와 일부 학계는 과학적 근거 부족과 낙인 효과, 산업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13일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정책학회가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서는 김종일 법무법인 화우 게임센터장이 게임 질병코드 도입은 국제통상 분쟁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센터장은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국이 게임을 자율 규제 대상으로 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규제를 강화하면 무역협정 위반을 이유로 소송이 제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내 PC·콘솔 시장에서 미국·일본 게임사의 점유율이 높다는 점에서, 국제 무역 환경에서 규제 형평성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정호 상명대 교수는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하며, 현시점에서 성급한 질병 분류는 산업 낙인과 소비자 혼란만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소연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비규제적 대안이 존재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규제를 만드는 것이 원칙에 위배된다”고 덧붙였다.
유현석 한국콘텐츠진흥원장 직무대행은 세미나에서 “게임은 청년 일자리와 수출을 견인하는 국가 전략산업”이라며, “산업과 의료, 소비자 간의 균형 있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임은 단지 여가 콘텐츠를 넘어, 관광 유치와 국가 이미지 제고에 기여하는 산업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3월 인기 게임 ‘검은사막’과 연계한 관광상품을 기획해 서울·청주·파주 등을 중심으로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나섰다.
콘텐츠업계 관계자는 “게임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국가 브랜드를 이끄는 핵심 콘텐츠”라며, “규제 일변도 접근보다 산업 생태계의 관점에서 균형 잡힌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