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태범 [심사역의 눈]

[이태범의 심사역의 눈] 〈9〉 기관이 세는 성과와 투자자가 세는 성과는 다르다

이태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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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심사역이 바라본 청년·지역 창업의 현장

같은 기업을 두고 한쪽은 대표 성공 사례로 꼽고 다른 쪽은 검토 보류로 분류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두 판단이 모두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창업지원기관의 성과 지표와 투자심사역의 판단 기준이 겹치는 부분이 생각보다 작기 때문이며, 이 어긋남은 개인의 안목 차이가 아니라 구조의 차이에서 온다.

 

창업지원기관의 성과는 대체로 네 가지로 측정된다. 지원한 기업의 수, 창출된 고용, 매출 증가율, 그리고 참여 기업의 투자유치 금액이다. 사업 보고서와 다음 해 예산이 이 숫자 위에서 결정된다. 담당자 입장에서는 이 네 가지를 채우는 것이 곧 사업을 잘 수행한 것이 된다.

 

투자자가 세는 것은 다르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성장인가, 회수가 가능한 구조인가, 다음 단계가 성립하는가를 본다. 지금 얼마를 벌었는지보다 그 방식이 반복될 수 있는지가 판단의 중심에 있다. 한 해의 실적보다 그 실적이 만들어진 경위를 더 오래 들여다본다. 그래서 같은 자료를 놓고도 두 사람이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두 지표가 갈라지는 전형적인 장면이 있다. 고용은 늘었는데 그 인건비가 지원금에 묶여 있는 경우다. 기관 보고서에는 고용 창출로 기록되지만 투자 검토에서는 지원 종료 시 사라질 인원으로 읽힌다. 같은 사실이 한쪽에서는 성과, 다른 쪽에서는 위험이 되는 것이다.

 

매출 증가율도 그렇다. 직전년도 매출이 5000만원이던 기업이 1억5000만원이 되면 증가율은 200%가 된다. 보고서에는 인상적인 숫자로 남는다. 그러나 그 매출이 어디서 왔는지가 빠지면 투자 판단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늘어난 1억원이 지원사업 용역이었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일회성 수주다.

 

투자유치 금액이라는 지표도 마찬가지다. 총액만 적히고 조건이 빠지면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어떤 성격의 자금인지, 어떤 조건이 붙었는지, 다음 단계가 가능한 구조인지에 따라 같은 금액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유치 금액이 큰 것이 오히려 다음 라운드를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기관의 지표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공적 자금을 쓰는 이상 집행의 성과는 측정 가능한 형태로 보고되어야 하고, 그 숫자가 있어야 다음 해 예산이 확보된다. 지표 자체를 없앨 수는 없고,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지표가 있어야 사업이 이어지고, 사업이 이어져야 기업이 지원을 받는다.

 

문제는 그 지표가 프로그램의 설계까지 결정할 때 생긴다. 숫자를 채우기 좋은 방향으로 프로그램이 짜이면 참여 기업이 얻는 것이 줄어든다. 참여 기업 수를 늘리기 위해 한 기업당 시간이 짧아지고, 투자유치 금액을 채우기 위해 이미 준비된 기업을 우선 선발하는 식이다. 도움이 가장 필요한 기업이 밀려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기관 프로그램이 실제 투자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공통점이 있다. 심사 기능이 프로그램 안에 상주하고, 한 번의 발표로 끝나지 않으며, 피드백을 반영해 다시 보는 과정이 설계되어 있다. 결과를 바꾸는 것은 참여 기업의 자료가 아니라 이 설계다. 같은 기업이라도 어떤 프로그램을 거쳤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실제로 한 번 발표하는 프로그램과 세 번 만나는 프로그램을 거쳤을 때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기업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기업을 설명할 기회가 세 번 있었던 것이다. 투자 결정은 대체로 첫 만남이 아니라 두 번째나 세 번째 만남에서 이루어진다. 첫 만남에서 결정되는 경우는 예외에 가깝다. 기업을 바꾸는 것보다 기회를 늘리는 편이 빠른 경우가 있다.

 

물론 모든 프로그램이 그렇게 설계될 수는 없다. 예산과 인력의 제약이 있고, 한 기관이 다룰 수 있는 기업 수에도 한계가 있다. 다만 넓게 얕게 갈 것인지 좁게 깊게 갈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이 사실상 성과 지표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점은 짚어 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기관이 지표에 한 칸을 더 넣어 볼 수 있다. 지원 종료 1년 뒤의 상태다. 몇 개 기업이 여전히 영업하고 있는지, 그중 몇 곳이 지원 없이 매출을 유지하는지. 측정이 번거롭고 담당자가 바뀌면 추적도 어렵지만, 이 숫자가 프로그램의 실제 성과에 가장 가깝다.

 

이 한 칸이 들어가면 프로그램의 설계가 자연히 달라진다. 종료 이후를 세기 시작하면 종료 이후를 준비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지표는 집행이 끝나는 시점에서 측정이 멈추고, 그래서 프로그램의 관심도 그 시점에서 멈춘다. 무엇을 세는지가 무엇을 하는지를 결정한다. 측정의 시점을 조금 늦추는 것만으로 프로그램의 성격이 달라진다.

 

결국 창업지원의 다음 과제는 프로그램을 늘리는 일이 아니다. 기관의 성과 지표에 투자자의 판단 기준을 한 칸 넣는 일이다. 두 쪽이 같은 것을 세기 시작하면, 지원과 투자 사이의 단절도 자연히 좁아진다.

 

이태범 심바벤처스 대표이사·한국청년경제인협회 회장

이태범 칼럼니스트
ceo@simbav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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