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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월당, 100년 만에 한국으로 귀환… 한·일 협력 통한 문화유산 복원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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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월당, 100년 만에 한국으로 귀환… 한·일 협력 통한 문화유산 복원 사례

문나리 기자
입력
조선 왕실 사당 추정 관월당, 일본 가마쿠라서 해체 후 국내 이송
왼쪽부터 고덕원(高德院, 주지 사토 다카오[佐藤孝雄]),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사장 김정희)기능기념촬영_국가유산청
왼쪽부터 고덕원(高德院, 주지 사토 다카오[佐藤孝雄]),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사장 김정희)기능기념촬영_국가유산청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100여 년간 머물렀던 한국 건축물 관월당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일본 가마쿠라의 고토쿠인과 약정을 체결하여 관월당 부재를 정식으로 양도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1920년대 일본인에게 넘어간 이후 100여 년 만의 일이다.

 

고토쿠인 측은 관월당 건물을 보존하고 복원하기 위해 지난해 건물을 해체했으며, 국가유산청과 협의하여 기와, 석재, 목재 등 각 부재를 순차적으로 한국으로 이송했다. 이번 관월당 귀환은 해외에 있는 한국 건물 전체가 돌아오는 첫 사례이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오랜 기간에 걸친 협의와 한일 양국의 협력을 통해 이뤄낸 뜻깊은 성과”라며 “소장자의 진정성 있는 기증과 양국 전문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관월당은 조선 왕실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이다. 정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형태이며, 높이가 11.3m에 달하는 일본의 국보 ‘가마쿠라 대불’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관월당은 1920년대 일본인에게 넘어간 것으로 여겨진다. 고토쿠인 측은 누리집을 통해 “1924년 스기노 기세이가 도쿄 메구로 자택에 있던 것을 옮겨 사찰에 기증했다”고 설명했다.

 

학계에서는 조선 왕실이 돈을 빌리면서 관월당 건물을 담보로 잡혔고, 이후 조선식산은행이 재정난으로 융자받을 때 스기노 기세이에게 증여했다는 설이 퍼져있다. 스기노 기세이는 훗날 야마이치 증권이 되는 야마이치 합자회사의 초대 사장을 지냈다. 일각에서는 관월당이 궁궐, 즉 경복궁에 있었던 건물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정확한 위치나 건물 용도 등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 연구와 조사에 따르면 관월당은 스기노 기세이에게 넘어간 후 1930년대에 고토쿠인에 기증되었고, 불상을 봉안하는 건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종합적인 조사 결과 관월당은 18~19세기에 조선 왕실과 관련한 사당 건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국가유산청은 전했다.

 

관월당은 한 차례 귀환 협의가 실패한 후 다시 고국 품으로 돌아오게 되어 의미가 크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은 2010년 일한불교교류협회 측과 관월당 건물 귀환에 합의했으나 이후 협의가 중단된 바 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2019년 고토쿠인 측과 건물 보존을 위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논의를 재개했고, 약 6년 만에 모든 부재를 양도받는 데 성공했다.

 

기증 의사를 밝힌 사토 다카오 고토쿠인 주지는 일본 현지에서 건물을 해체하고 부재를 옮기는 비용을 자비로 부담하며 협조했다. 고토쿠인 측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간 문화유산을 지속적으로 연구하자는 뜻을 밝히며 별도 기금을 마련하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기부하겠다는 입장도 전했다.

문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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