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태범 [심사역의 눈]

지역에서 창업한다는 것

이태범 칼럼니스트
입력
투자심사역이 바라본 청년·지역 창업의 현장

지역에서 창업한다는 것은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는 일이 아니다. 아직 설계되지 않은 통로를 먼저 지나가는 일이다. 문제는 그 통로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지, 지나가는 사람의 역량에 있지 않다. 그런데 지역 창업을 이야기할 때 이 구분이 자주 흐려진다. 결과의 차이를 곧바로 능력의 차이로 옮겨 읽는 순간, 해결해야 할 문제도 엉뚱한 곳으로 옮겨 간다.

 

2026년 상반기 국내 벤처투자는 88676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비수도권 투자액은 164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4.7% 늘었다. 수도권 증가율 49.9%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숫자만 보면 지역 생태계로 자본이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실제로 지역 기반의 조합 결성과 기관 투자도 함께 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분포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2024년 말 기준 국내 벤처기업 38369개 가운데 65.4%가 수도권에 있었다. 특히 대표자가 30세 미만인 청년 벤처기업은 72.8%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시작하는 단계일수록 쏠림이 심하다는 뜻이다. 투자금은 지역으로 흘러가는데 기업 자체는 여전히 수도권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두 숫자를 함께 놓으면 최근의 증가세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가 달라진다. 지역으로 간 자금의 상당 부분이 이미 자리를 잡은 기업에 갔을 가능성을 함께 봐야 한다는 뜻이다. 투자액의 증가와 창업 생태계의 회복은 같은 말이 아니다. 전자는 자본의 이동이고 후자는 사람과 기업의 이동이며, 둘 사이에는 시차가 있다.

 

매출 지표의 차이도 작지 않다. 기업당 연평균 매출은 권역에 따라 20억원 이상 벌어진다. 이를 지역 창업가의 역량 차이로 해석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격차의 상당 부분은 밀도에서 나온다. 고객이 모여 있는 밀도, 함께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밀도, 그리고 다음 투자자를 만날 수 있는 밀도다. 같은 사람이 다른 밀도 위에 서 있는 것이다.

 

투자 심사 현장에서 지역 기업을 검토할 때 반복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질문도 여기에 있다. 사람을 더 구할 수 있는가. 첫 고객을 어디서 확보할 것인가. 다음 투자자와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기술의 수준을 묻는 질문이 아니다. 기술은 이미 충분한 경우가 많고, 막히는 지점은 늘 그다음에 있다.

 

세 질문 모두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제품을 더 잘 만든다고 인근에 인력 풀이 생기지 않고, 매출을 늘린다고 투자자가 가까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역 창업 지원이 공간과 사업비에 머무르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변수를 기업에게 맡겨 두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역에서 시작하는 것이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경쟁 밀도가 낮다는 것은 첫 고객과 첫 사례를 확보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공기관의 실증 기회에 접근하기도 수월하고, 지자체 사업의 첫 파트너가 될 가능성도 높다. 초기 단계에서 확보한 실증 데이터와 첫 매출은 결코 작은 자산이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낸 성과가 바깥에서 읽히는 형태로 정리되지 못한 채 안에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실적은 있는데 그 실적이 무엇을 증명하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어느 기관과 무슨 사업을 했다는 목록은 남는데, 누가 돈을 냈고 그것이 다시 일어났는지는 적히지 않는다. 성과를 만드는 일보다 성과를 설명하는 일에서 막히는 경우가 더 자주 발생한다.

 

결국 접점의 문제로 모인다. 투자심사역 대부분은 수도권에 상주한다. 지역 기업은 투자자를 만날 기회 자체가 적고, 만나더라도 피드백을 받아 자료를 고치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반복하기 어렵다. 투자유치는 한 번의 발표로 결정되는 일이 아니라 여러 차례의 수정으로 완성되는 일이다. 그 과정을 몇 번 돌 수 있느냐가 결과를 가른다.

 

그래서 반복 횟수의 차이가 실질적인 격차를 만든다. 같은 수준의 기업이 한 곳에서는 세 번의 기회를 갖고 다른 곳에서는 한 번의 기회를 갖는다면, 결과의 차이는 역량이 아니라 횟수에서 나온 것이다. 지역 격차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빠지는 변수가 이것이다. 자금의 총액은 자주 언급되는데 만남의 횟수는 측정되지도 않는다.

 

물론 최근의 변화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비수도권 투자액이 두 배 넘게 늘었다는 것은 자금의 방향이 실제로 움직였다는 뜻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결성되는 개인투자조합이 늘고 있고, 대학기술지주와 지역 혁신기관의 투자 기능도 확대되고 있다. 통로가 조금씩 생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 흐름 자체는 이어질 필요가 있다.

 

다만 다음 단계에서 다뤄야 할 것은 지원사업의 개수가 아니라 접점의 빈도다. 지역에 심사와 후속 연계 기능이 상주하도록 만드는 일, 성과를 낸 기업이 자본과 만나는 자리를 상시화하는 일이다. 한 번 발표하고 끝나는 자리를 열 번 만드는 것보다, 다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한 번 설계하는 편이 낫다. 이것은 예산보다 설계의 문제에 가깝다.

 

결국 지역 창업정책이 답해야 할 질문은 자금을 얼마나 보냈는가가 아니다. 그 자금과 기업이 몇 번 만날 수 있었는가다. 비수도권 투자액이 두 배로 늘어난 지금이 그 구조를 설계하기에 적절한 시점이다. 자본이 돌아온 자리에 통로까지 함께 만들어야, 다음 통계에서는 기업의 분포도 움직일 수 있다.

 

이태범 심바벤처스 대표이사·한국청년경제인협회 회장 

이태범 칼럼니스트
ceo@simbav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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