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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청소년, 낙인에 갇힌 재도약의 가능성… 사회가 시선을 바꿔야
COLUMN
[이우원]위기청소년, 다시 서는 길

위기청소년, 낙인에 갇힌 재도약의 가능성… 사회가 시선을 바꿔야

이우원 칼럼리스트
입력

  우리 사회에는 가정과 학교, 그리고 지역사회의 틈에서 비정상적으로 성장 기회를 빼앗긴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1·2주 차 논의에서 보았듯, 이른바 ‘위기청소년’은 단순히 빈곤하거나 학업 성적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가정폭력과 해체, 학교폭력·중도 탈락, 디지털 의존 등 복합적 리스크가 동시에 얽혀, 가정·학교·지역사회의 삼중 안전망에서 탈락한 상태를 말한다.

 3주 차에선 가정·학교·사회가 만든 구조적 위기가 청소년을 거리로 내몰고, 4주 차에선 복지 중심의 단발성 접근만으로는 부족하며 교육적 기회를 보장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제 5주 차를 맞아, 정작 사회가 위기청소년을 어떠한 ‘인식과 편견’으로 바라보는지 돌아볼 시점이다.

  낙인과 오해가 해결책을 얼마나 막고 있는지, 수치와 사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정과 학교의 문턱을 넘지 못한 청소년들

여성가족부가 발간한 『2023 청소년 백서』에 따르면, 가정폭력 경험이 있는 청소년 중 약 39.5%가 이후 가출·학업 포기·비행 등을 경험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가정 갈등이나 폭력이 장기화될수록 자기 비하와 우울감이 심화되고, 이를 견디지 못해 거리로 내몰리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경고가 나온다.

 한국청소년정책 연구원의 『청소년 위기 실태조사 2022』 보고서 역시, 가정폭력을 겪은 청소년이 2년 내에 불안정 거처(가출, 쉼터 순환, 찜질방 생활 등)로 이동할 확률이 일반 청소년 대비 세 배 이상 높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떨까.

 학업 부진이나 중도 탈락을 겪는 청소년들의 상당수가 또래 폭력과 소외를 동시에 경험한다.

 교육부 통계(2022)에 따르면 연간 약 14만 6천 명이 공식적으로 학교 밖 청소년으로 분류되는데, 이 중 40% 이상이 ‘심한 학교폭력 또는 집단 따돌림’을 이유로 학교를 떠났다고 응답했다.

 가정 기능이 무너지거나, 학교라는 울타리에서조차 보호받지 못하면, 청소년은 거리와 인터넷 세계에 과도하게 의존하기 쉬운 환경에 놓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2023)에 의하면 청소년의 40.1%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에 속한다. 이는 학업 능력 저하·사회성 위축으로 이어지며, 오프라인 관계망이 사라질수록 ‘문제행동’이라고 치부되는 양태가 더 빈번해진다.

낙인과 책임 전가… 국내 사회의 ‘편견’은 더 큰 벽

  문제는 사회적 인식의 틀이 이들을 ‘문제아’ ‘비행 청소년’으로만 몰아붙인다는 데 있다.
 중앙일보가 2022~2023년에 낸 사설들을 보면,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에 대한 ‘촉법소년 연령 하향’이나 ‘강력 처벌’을 주장하는 논조가 자주 등장하지만, 가정폭력이나 학교 부적응 같은 
청소년 내부 원인이 아닌 구조적 문제를 집중 조명한 사례는 현저히 적었다.

 한국청소년 정책연 구원 조사를 보면, 가정·학교·제도권 보호망에서 이탈된 청소년 중 무려 32%가 “사회가 자신을 비행자로 낙인찍을까 두려워 고민을 숨긴다"라고 답했다.

 일단 낙인이 찍히면, 이들은 돌이키기 힘든 좌절감을 안게 되고 자신을 더 깊은 음지로 내몬다.

더욱 심각한 점은 “네가 문제를 일으켰으니 네 탓”이라는 단편적 책임 전가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일시 보호나 복지 지원조차 “이들이 변화할 의지가 있느냐"라는 식으로 평가받고, 의지가 약하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지원이 중단되기 쉽다. 이는 가정폭력, 학교폭력, 정신건강 위기, 디지털 중독 등 복합적 요인이 겹쳐 있는 상태에서, 오히려 청소년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전형적 ‘희생양 만들기’가 된다.

  사회의 시선이 따뜻한 지원 대신 처벌과 통제에만 치중되면, 정책도 마찬가지로 비행 예방이나 사후 단속 중심으로 기울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해외: 낙인 없는 재도약 시스템

  해외 사례는 다소 다르다.
 물론 미국은 저소득 가정·인종 차별이 결합해 위기청소년을 양산하고 있으나, 동시에 ‘Alternative Education Campus(AEC)’나 ‘Second Chance Program’을 통해 낙인 없이 학업 복귀를 돕는다.

 미연방 교육부 통계(2022)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들로 인해 연 2만 7천 명 이상이 재학습 기회를 얻었다.

 “비행자”라는 딱지 대신, “다양한 배경의 청소년에게 맞춤형 대안교육”이라는 프레임을 써서 사회 통합을 유도한다.

  핀란드 교육부가 운영하는 ‘청소년 워크숍(Youth Workshop)’도 주목할 만하다.
복지·직업교육·심리치료를 결합해, 연간 약 1만여 명의 학교 밖 청소년에게 기술 훈련과 정서 지원을 병행한다.

 “회복 가능성”이란 기본 전제가 있으므로, 낙인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성장한다"라는 공동체 의식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된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프리스쿨(Freeschool)’ 제도를 통해, 해마다 3만 명 이상의 청소년이 검정고시 후 공교육 복귀나 직업학교 진학을 시도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문제아’가 아니라 ‘학습자로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문화 덕분에, 가족과 본인 모두 부담을 덜 느끼며 복귀 과정을 이행한다고 한다.

편견에서 회복 가능성으로… 시작은 시선의 전환

  결국 국내외 비교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낙인과 편견이 위기청소년의 재통합, 자립, 교육 복귀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사실이다.

 편견 대신 “회복 가능성”에 주목하는 순간, 제도와 문화가 실효를 얻는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한번 문제아는 영원한 문제아”라는 사고방식이 뿌리 깊은데, 그 때문에 청소년 스스로를 ‘무력한 존재’로 규정하고 해결 노력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가 지금 바꿔야 할 것은 단지 제도나 예산이 아니다.

 ‘문제아’라는 사회의 낙인을 걷어내고, ‘회복 가능한 학습자’라는 인식 전환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바뀔 때, 복지와 교육은 효과를 낼 수 있고, 결국 국가와 사회가 함께 얻는 이익도 커진다.

 실제로 검정고시나 대안교육을 마친 청소년이 안정적으로 취업하거나 대학에 진학해 사회적 비용을 크게 절감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22).

제도와 시각의 변화를 위한 과제

  그렇다면 어떻게 사회 전반의 시각을 바꿀 것인가.

 우선, ‘낙인’을 유발하는 언어나 프레임부터 재점검해야 한다.

 법·제도에서 ‘비행 청소년’, ‘문제 청소년’ 대신 위기청소년을 “회복 가능성이 있는 주체”로 명시하거나, ‘학습자’로 인정하는 법률·조례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상징적 효과가 크다.

 또한 지자체 차원에서 ‘가정 폭력’이나 ‘학업 중단’을 초기에 파악해,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를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해외의 차터스쿨, 청소년 워크숍처럼, 한국도 복지·교육·심리치료를 아우르는 ‘리커버리(Recovery) 센터’를 전국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정부뿐 아니라 학교와 지역사회, 특히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 ‘청소년 범죄 엄중 처벌’이라는 프레임만 재생산할 것이 아니라, 위기청소년들을 실제로 어떻게 복귀시켜 삶의 궤도를 회복하게 할지를 함께 논의하는 방향으로 담론을 확대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범죄가 아닌 회복”이라는 키워드로 청소년 정책을 재설계할 때, 오히려 재범률이 떨어지고 사회적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미국 심리학회, APA, 2021).

결론: 편견을 지운 자리에 기회를 두자

  위기청소년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다. 그러나 낙인과 편견부터 거둬내지 않는다면, 지금 운용 중인 복지나 교육 정책조차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낙인 대신 “회복 가능성”을, 처벌 대신 “교육과 자립”을 우선하는 시선이 자리 잡으면, 위기청소년 스스로도 “내가 다시 배울 수 있다"라는 동기를 갖는다.

 그럴 때 복지와 교육은 비로소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과거 주차에서 강조해 온 대로, 위기청소년은 언제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학습권을 가진 주체
다.

 만약에 우리가 그들을 ‘가족·학교·사회가 만든 그늘’ 속에 방치한다면, 잃어버리는 것은 청소년의 미래만이 아니다. 결국 우리 공동체 전체가 떠안아야 할 부담이 될 것이다.

 낙인을 지운 자리에 교육의 기회를 놓고, 편견이 사라진 자리에 믿음을 심을 때, 비로소 위기청소년은 미래를 향해 걸어갈 수 있다.

 

 우리는 지금, ‘한 번 문제아면 끝’이라는 굴레를 끊어내고, ‘회복 가능성 있는 평생학습자’라는 새 시선으로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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