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청소년, 가정과 학교의 침묵이 만든 사회의 그림자
우리 사회가 미래를 맡겨야 할 청소년 중 일부가 가정과 학교, 그리고 지역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심각한 위기에 내몰려 있다.
가정 폭력과 학업 부적응, 극심한 디지털 의존 등 복합적인 문제들이 동시에 밀려오면서, 이들의 고통은 개인의 삶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안정성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최근 여성가족부 통계를 보면, 청소년 중 약 44%가 부모나 보호자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46%가 언어적 폭력을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가정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거리로 나온 청소년은 범죄와 착취 위험에 노출되고, ‘왕따’ 피해나 우울증 등으로 학업을 포기한 청소년은 사회적 낙인에 시달리며 자립의 기회를 잃기 쉽다.

위기청소년이 처한 복합적 현실
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보고서에 따르면, 가출을 경험한 위기청소년의 70% 이상이 가정 갈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이러한 가정 기능의 붕괴는 청소년을 거리 생활로 몰아가고, 그 결과 더 깊은 소외와 범죄 위험으로 이어진다.
2023년 여성가족부 청소년백서에 따르면 약 14만 6천 명이 학교 밖 청소년으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정서적 불안과 낮은 학업 성취감, 학교폭력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얽히며 사회 진입 문턱을 더욱 높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40.1%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에 속한다.
학업 능력 저하와 가족·친구 관계 단절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지만, 이러한 위험 징후를 가정과 학교에서 조기에 감지하고 개입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한편 해외 주요 국가들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으나, 대응 방식엔 차이가 있다.
미국은 빈곤과 인종 차별이 맞물려 저소득층 청소년의 학업 중단률이 중산층의 4배 이상으로 높다는 통계(NYCI)가 보고될 만큼 구조적 불평등이 두드러진다. 유럽에서는 이민·난민 배경 청소년이 언어 장벽과 문화 충돌로 학업 포기와 사회적 고립에 자주 내몰린다. 일본은 입시 스트레스, 왕따, 은둔형 생활(hikikomori) 등으로 매년 수만 명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지역사회 대안교육(챗터스쿨 등)을 통해 재학습 기회를 마련하고, 핀란드는 직업교육과 심리치료를 결합한 통합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일본은 자유학교·프리스쿨 정책으로 학습 단절을 최소화하고 있다. 이는 모두 위기청소년을 단순한 ‘복지 대상자’가 아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 학습자’로 인식하는 접근에서 비롯된다.
침묵 대신 행동이 필요한 시점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런 복합적 위기를 조기에 포착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장치가 충분치 않다는 데 있다.
긴급 보호나 상담 서비스 같은 복지제도가 존재하지만, 반복적인 가정 내 폭력이나 학대에 실질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나, 결석·학업 부진·폭력 피해 등 학교에서의 이상 징후를 무심코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
뒤늦게 사태가 드러나는 악순환 속에서 청소년이 비행이나 범죄로 내몰린 후에야 지원이 시작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국, 가정 중심 개입 체계를 강화해 부모교육과 아동학대 예방 시스템을 촘촘히 하고, 학교 내에서 심리·정서적 신호를 포착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진단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정신건강 클리닉이나 치료비 지원을 확대하여 경제적 부담 없이 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고,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교육 바우처나 대안학교 지원을 늘려 학업 포기가 곧바로 사회적 이탈로 이어지지 않게 막는 일 또한 시급하다.
회복과 학습: 평생학습자로의 인식 전환
무엇보다 위기청소년을 ‘회복 가능한 청소년’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학습권을 지닌 평생학
습자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청소년 시기에 학업을 중단했더라도, 적절한 교육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언제든 학습을 재개해 자신에게 맞는 진로를 찾을 수 있다.
‘학교 밖 청소년’이 아니라 ‘학습자’로 인정해주는 인식 변화가 이뤄져야, 이들이 배움을 통해 자존감과 전문성을 회복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해외에서 대안 교육이나 직업훈련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다시 대학에 진학하거나 기술 자격증을 따는 사례가 늘고 있듯, 한국도 ‘위기는 재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라는 관점을 확산해야 한다.
위기청소년에게 평생학습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적 투자이기도 하다.
결론: 함께 책임지는 사회만이 미래를 지킨다
위기청소년 문제는 특정 가정이나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이는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 전반의 침묵과 무관심이 만들어낸 그림자이자, 우리가 분담해야 할 책임이다.
지금 이들을 외면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그 절망은 고스란히 공동체를 흔드는 폭풍이 될 수도 있다.
성숙한 사회라면, 청소년을 ‘문제아’가 아니라 회복 가능성을 지닌 ‘평생학습자’로 바라보고 조기 발견·예방·교육을 결합한 복귀 전략을 세워야 한다.
침묵을 걷고 행동에 나설 때, 위기에 놓인 청소년들이 다시금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성장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