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 박정우 - '안주할 것 인가, 행복할 것 인가.'
은평문화재단 아카이빙 기획 컨텐츠 '청년, 우리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현재 증산동에서 밀라노 기사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박정우라고 합니다.
Q. 이 일은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하시게 되었나요?
A. 19년도까지는 회사에 식품 연구원으로 있었어요. 회사 다니면서 ‘작은 레스토랑을 내가 꼭 운영하고 싶다’ 는 생각은 있었는데, 용기도 없었고 지식도 없었죠. 무엇보다도 돈이 없었죠. 그렇다고 회사 생활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거든요. 문제는 내가 이걸 만족하느냐, 안주하느냐 고민해보면 안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만족한다면 내가 이 일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행복해야 하는데 행복하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아내한테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아내가 “당신 해보고 싶었던 거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더 늦어져서 내가 40살, 50살에 은퇴를 해서 가게를 한들 그때 내 몸이 그걸 받쳐줄까? 근데 내가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한다면 몸이 감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2020년 8월 5일 가게를 오픈했어요. 코로나 막 유행했을 때에요. 20년 12월,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마치 전쟁터처럼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때 사람들이 외식이라는 걸 거의 안 했어요. 그때는 오전 10시 반부터 시작해서 밤 11시까지 9시까지 운영을 했을 때인데도 아예 하루에 손님이 한 명도 없었죠.
Q. 코로나가 유행일 때면 정말 힘드셨을텐데, 어떻게 그 시기를 극복하셨나요?
A. 어느 날 우연히 손님이 드시고 간 빈 그릇에 햇살이 비춰 눈에 딱 들어오더라고요. 그전에 손님 많을 때는 그냥 빈 그릇이어도 그렇게 눈에 안 들어왔었거든요. 그때부터 인스타그램에 손님들의 빈 그릇 이야기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냥 인스타에 제가 간직하려고요. 그러다가 이제 한 분 두 분 오시는 손님들과 대화도 하고, 손님들의 특징이나 대화 내용을 에피소드처럼 묶어서 같이 올렸죠.
딱히 예쁜 사진은 없었어요. 그냥 손님들이 드시고 간 빈 그릇 얘기만 그렇게 올렸는데, 코로나가 좀 풀리면서 그때 오셨던 손님들이 많은 힘을 실어주셨죠. 그러니까 단골이 한 30명, 50명 생겼고, 100명 정도 생겼을 때부터는 줄을 서기 시작했어요.
그 시작은 그냥 여기 이 뒷골목, 유동인구도 없고, 10년째 망한 자리로 유명한 이 자리에서부터였죠. 홍보할 돈도 없이요. 찾아오시는 손님분들이 직접 홍보를 맡아주신 거에요.

Q. 손님들이 오시면 중점적으로 신경쓰시는 게 있으신가요?
A. 자영업자들 입장에서는 손님들하고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자기 가게에 찾아오게 할 것인지가 중요한 고민인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손님은 왕이다’ 같은 말도 하게 되고요.
하지만 저는 손님을 왕처럼 대접한다기보다는 그냥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가는 공간이 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제일 컸어요. 늘 생각해요. 밀라노 기사식당은 손님들하고 같이 만들어가는 곳이라고.
Q. 식당이름을 밀라노 기사 식당으로 이렇게 짓게 된 배경 같은 게 좀 있으실까요?
A. 일단은 제가 처음에 음식으로 잡았던 게 파스타, 리조또, 라자냐, 이런 이탈리아 음식이었어요. 그러고 이제 강남권을 봤을 때 파인 레스토랑 급을 많이 보긴 했죠. 너무 저가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너무 저가형으로 하다 보면 제가 보여드릴 걸 많이 보여드리지 못하니까요.
근데 파인 레스토랑으로 하자면, 일반 대중이 가격을 지불하고 오기가 힘들잖아요. 큰 마음 먹고 한 번은 올 수 있는데, 두 번은 힘들고 세 번도 힘들어요. 저는 제 식당이 그냥 생각나면 올 수 있는 가격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거든요. 세련되지만, 그러니까 파인 레스토랑 정도로 너무 무겁지는 않지만, 그런 느낌이 있고 , 그런데 가격은 너무 부담되지 않는 레스토랑. 제가 표방했던 건 대중이 그런 파인 레스토랑의 경험을 하고 싶을 때 편하게 오셨으면 했어요.
그래서 세련되면서 편안한 공간이라는 그 일단은 저의 브랜딩의 가치를 좀 잡은 거예요. 사람이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 그래서 ‘세련됨’을 잡았는데, 키워드를 이태리에서 잡아야 되니까 패션 하면 떠오르는 도시, 밀라노를 가져 온거죠. 그리고 여기 쭉 돌아다니면 기사 식당이 많잖아요. 기사 식당 같은 경우는 대중적이기도 하고, 편안하기도 하면서 음식도 맛있잖아요. 그래서 밀라노라는 키워드에 기사 식당이라는 컨셉을 믹스매치 시킨 거에요.

Q. 많은 곳이 있음에도, 은평구에서 식당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TV 프로그램 ‘식스센스’ 에 저희 식당이 방송되고 많은 사업제안이 왔어요. 청담이나 한남동이나 이런 데의 건물주들이 강남으로 오면 식당을 열어주겠다고도 했는데, 솔직히 솔깃했죠. 여기보다 장소 자체는 훨씬 더 나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애착과 애정이 생긴 것 같아요. 힘든 시기를 이겨낸 곳이기도 하고, 제가 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제가 은평구 대표하는 맛집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죠.
처음은 다 어설프고 부족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증산동 주민들이 제발 떠나지 말아달라는 말들을 많이 하세요. 어디 가지 마시라고요.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 저는 조금 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은평구’ 하면 떠오르는 곳이 밀라노 기사 식당이 됐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Q. 조금은 가벼운 질문드리겠습니다. 만약 로또 1등이 된다면 어떻게 쓰고 싶으신지?
A: 로또 1등, 그러니까 18억 정도 됐다고 하면, 저는 가게를 정원 있는 단독주택으로 꾸미고 싶어요. 막 진짜 정원도 있고 음식을 먹지 않아도 손님들이 와서 그냥 정원에서 사진 찍고 놀 수 있게끔 말이에요. 제 탄생 목이 동백나무거든요. 자그마한 동백나무 숲을 하나 만들어서 거기에 사람들이 앉아서 좀 쉬어도 갈 수 있는 그런 곳을요. 그게 바로 돈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그 손님들을 위해 그렇게 공간을 열어놓으면 언제든지 식사하러 오실 수도 있거든요. 지나가다 편하게 인사도 나누고요.
지금 이곳에선 조금 힘들겠지만, 정원이 있는 작은 단독주택을 하나 사게 된다면 이곳의 느낌을 거기에 실어야죠. 지금 제게 돈이 생긴다면 바로 거기에 투입할 것 같아요.

Q. 끝으로 청년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생각이 제일 커요. 언론이 만들어온 얘기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진짜 그렇게 얘기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청년 층이 삶을 포기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죽지 않으면 삶이 마감된 건 아니잖아요. 가게가 폐업하지 않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거나, 도전해 보고 싶은 게 있다면 해보세요. ‘이렇게 성공하세요’가 아니라, 내가 500만원이 있으면 500만 원안에서 분수껏 해보는 거죠.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어야 하니까요.그렇게 도전하면서 그냥 자신의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어요. 그냥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말이에요. 그렇게 자신만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포기하지 말라는 말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