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잘되는데 밖에서는 안 되는 이유

실적과 성과는 같은 말이 아니다. 실적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고, 성과는 그 일이 무엇을 증명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지역 기업의 자료를 검토하다 보면 실적은 두꺼운데 성과가 없는 경우를 자주 만난다. 한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설명이 없어서이고, 이 둘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역에서 시작한 기업이 상대적으로 얻기 쉬운 자산이 있다. 공공기관의 실증 기회, 지자체 파일럿 사업, 첫 거래처, 그리고 오래된 단골이다.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라면 얻기 어려운 첫 사례를 비교적 이른 시점에 확보한다. 초기 기업에 첫 사례가 갖는 무게를 생각하면 이것은 분명한 이점이다.
그런데 이 자산이 자료에서는 자주 사라진다. 사업 수행 실적의 목록으로만 기록되기 때문이다. 어느 기관과 무슨 사업을 몇 년에 했다는 나열은 이력이지 성과가 아니다. 읽는 사람은 그것으로 아무 판단도 할 수 없고, 목록이 길수록 오히려 초점이 흐려진다. 정리되지 않은 실적은 많을수록 오히려 판단을 늦춘다.
바깥 사람이 성과에서 읽으려는 것은 세 가지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가. 누가 돈을 냈는가. 여기 밖에서도 성립하는가. 이 세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실적은 규모와 관계없이 판단에서 제외된다. 반대로 작은 실적이라도 세 질문에 답하면 그 자리에서 검토 대상이 된다.
특히 두 번째 질문이 중요하다. 돈을 받지 않고 진행한 실증과 계약으로 이어진 실증은 전혀 다른 신호다. 무상 실증은 기술이 작동한다는 것까지만 증명한다. 유상 계약은 그 기술에 돈을 낼 사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초기 단계에서 후자의 무게가 훨씬 크다.
자료에서 이 구분이 빠지면 성과가 오히려 의심을 만든다. 실증 기관이 여러 곳 나열되어 있는데 계약으로 이어진 건이 하나도 언급되지 않으면, 읽는 사람은 전환이 안 됐다고 읽는다. 실제로는 전환된 건이 있는데 적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쓰지 않아서 없는 것이 되는 성과가 생각보다 많다. 적지 않아 사라진 성과는 나중에 되살리기도 어렵다.
정리의 최소 단위는 어렵지 않다. 몇 곳에서, 몇 개월 동안, 어떤 조건으로 진행했고, 종료 후 다시 거래된 비율은 얼마인가. 네 가지만 적혀 있어도 실적은 판단 가능한 성과가 된다. 표 하나면 충분하고 문장으로 길게 풀 필요도 없다. 오히려 표가 문장보다 빨리 읽힌다.
골목의 가게도 같은 방식으로 읽힌다. 동네에서 잘 팔린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성과이지만 밖에서도 팔린다는 근거는 아니다. 그 사이를 잇는 것은 맛이나 손맛이 아니라 조건의 정리다. 어떤 손님이 얼마나 자주 얼마를 쓰는가, 그리고 그 손님은 왜 여기까지 오는가가 정리되어야 한다.
공공 실증이나 지자체 사업이 많은 기업일수록 한 가지를 더 확인하게 된다. 그 거래가 지역 안에서만 성립하는 조건이었는지 여부다. 인근이라서 가능했던 대응 속도, 담당자와의 오랜 관계, 지역 우대 요건 같은 것들이 성과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한다. 조건을 아는 기업은 확장 계획도 다르게 세운다.
물론 지역 조건에 기댄 성과가 나쁜 것은 아니다. 첫 사례는 어떤 조건에서든 만들어야 하고, 그것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능력이다. 문제는 그 조건을 모른 채 확장 계획을 세울 때 생긴다. 같은 방식으로 다른 지역에 가면 되리라 가정하고 인력과 자금을 투입했다가 되돌아오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스스로 던져 볼 질문이 하나 있다. 이 성과가 지금의 위치 때문에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조건에서도 성립하는 것인가. 위치 덕분이라면 그것은 약점이 아니라 아직 확인되지 않은 조건이다.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은 결과가 다르고, 투자자도 그 차이를 읽는다.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 조건이 다른 곳에서 작은 규모로 한 번 더 해 보는 것이다. 계약 한 건, 거래처 한 곳이면 된다. 그 하나가 생기는 순간 앞의 실적 전체가 다른 무게로 읽힌다. 열 건의 지역 실증보다 한 건의 외부 계약이 판단을 바꾸는 경우가 실제로 많다. 작게 확인하는 비용이 크게 실패하는 비용보다 훨씬 낮다.
창업지원기관의 프로그램에서도 이 부분이 다뤄질 필요가 있다. 사업계획서 작성법을 가르치는 시간은 많은데, 이미 만든 성과를 어떻게 세고 어떻게 정리하는지를 다루는 시간은 드물다. 참여 기업 대부분은 쓸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리되지 않아서 못 쓴다. 이 작업은 컨설팅이라기보다 기록의 정리에 가깝다. 정리를 돕는 것만으로 결과가 달라지는 기업이 실제로 많다.
결국 지역 기업의 과제는 성과를 만드는 일보다 성과를 설명하는 일에서 더 자주 발생한다. 그리고 설명은 글솜씨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세었는가의 문제다. 세지 않은 것은 설명할 수 없고, 설명되지 않은 성과는 밖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태범 심바벤처스 대표이사·한국청년경제인협회 회장
